항목 ID | GC07500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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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光洙 |
영어공식명칭 | Sin Kwangsu |
이칭/별칭 | 성연(聖淵),석북(石北),오악산인(五嶽山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병남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익산과 관련한 작품을 남긴 문신.
[가계]
신광수(申光洙)[1712~1775]의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성연(聖淵), 호는 석북(石北) 또는 오악산인(五嶽山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행성현도찰방(行省峴道察訪)을 지낸 신흡(申潝)이고, 할아버지는 신태제(申泰濟)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신호(申澔)이며, 어머니는 통덕랑 이휘(李徽)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부인인 윤두서(尹斗緖)의 딸 해남윤씨(海南尹氏)와의 사이에 아들 신우상(申禹相)·신기상(申夔相)·신위상(申渭相)·신위상(申渭相)·신석상(申奭相)·신보상(申甫相)을 두었다.
[활동 사항]
신광수는 1712년(숙종 38)에 태어났다. 1750년(영조 26)에 치러진 식년 진사시에서 3등 10위로 합격한 후 영릉(寧陵)참봉, 의금부도사, 선공감봉사, 돈녕부주부와 연천현감 등을 지냈다. 1772년에는 기로정시(耆老庭試) 갑과 장원으로 급제하여 돈녕부도정이 되었다. 당시 영조는 신광수가 한양에 머무를 집 한 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거주할 집과 노비를 내렸다고 한다. 이후 우승지, 영월부사를 역임하였다.
신광수는 익산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18세기 중후반 익산을 둘러싼 주위의 사정을 파악할 수 있는 「금마별가(金馬別歌)」라는 시를 남겼다. 「금마별가」는 1760년에 지은 5언 4구 32수의 악부시(樂府詩)로, 당시 익산현감으로 재직하며 선정을 베풀었던 남태보(南泰普)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금마 고을 사람들이 이별을 아쉬워하였던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신광수는 1775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신광수의 작품으로는 「관서악부(關西樂府)」, 「관산융마(關山戎馬)」, 「마생전(馬生傳)」, 「호승전(虎僧傳)」, 「검승전(劍僧傳)」, 「탐라록(耽羅錄)」 등이 있으며, 문집으로 『석북집(石北集)』과 『석북과시집(石北科詩集)』이 전한다. 『석북집』은 아들인 신우상·신기상이 신광수가 사망한 뒤 시문을 정리하여 16권 8책의 필사본으로 엮었으며, 이후 1906년(고종 43) 5세손인 신관휴(申觀休)가 목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