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637
한자 沙宅積德
영어공식명칭 Sataekjeokdeok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귀족|관료
성별
대표 관직 좌평

[정의]

삼국 시대 창건된 익산 미륵사지와 관련이 있는 백제의 귀족.

[활동 사항]

사택적덕(沙宅積德)[?~?]은 백제 무왕[재위 600~641]의 장인이며 좌평을 지냈다. 사택적덕의 성으로 추정되는 ‘사택’과 관련하여 다른 기록에서는 ‘사탁(沙矺)’이나 ‘사(沙)’로도 적고 있다. 중국 기록인 『수서(隋書)』에는 백제의 유력 가문을 ‘대성팔족(大姓八族)’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그중에 사씨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보이는 장군 사걸(沙乞),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보이는 사택기루(沙宅己婁) 등을 통해 사비 천도 이후 사택씨가 백제의 핵심 정치세력으로 부상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사택적덕 대에 와서는 왕비까지 배출함으로써 사택씨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이러한 추정은 무왕의 뒤를 이은 의자왕 때에도 사택지적(砂宅智積)이 대좌평을 지낸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구당서』에도 ‘대좌평 사탁천복(沙矺千福)’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사택지적과 사택적덕, 그리고 사탁천복의 자세한 관계는 접어두더라도 적어도 무왕에서 의자왕에 이르는 시기 사택씨 가문이 권력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2009년 1월에 익산 미륵사지 서탑을 보수하면서 발견한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사택적덕의 딸인 사택왕후가 익산 미륵사 창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는 국가 대찰로서의 미륵사가 사택씨 가문의 지원으로 창건되었고, 나아가 무왕의 익산 수도 경영에도 유력한 후원자였음을 의미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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