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6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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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稷 |
영어공식명칭 | Oh Jik |
이칭/별칭 | 사형(士馨),삼송정(三松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류호석 |
출생 시기/일시 | 1574년 - 오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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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4년 - 오직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6년 - 오직 선전관으로 비변사낭관 겸임 |
활동 시기/일시 | 1614년 - 오직 군기시주부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18년 - 오직 명나라의 후금 정벌에 원병으로 출진 |
몰년 시기/일시 | 1619년 - 오직 사망 |
사당|배향지 | 삼세오충렬사 -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중신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해주(海州) |
대표 관직 | 도총부총관 |
[정의]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무신.
[가계]
오직(吳稷)[1575~1619]의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자는 사형(士馨), 호는 삼송정(三松亭)이다. 할아버지는 오하몽(吳下蒙)이고, 아버지는 순천부사 재임 시 남원성전투에서 전사한 오응정(吳應鼎)이다. 형인 오욱(吳稶)과 동생인 오동량(吳東亮)도 남원성에서 아버지 오응정과 함께 전사하였다. 아들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싸우다 인조가 청군에게 항복하자 자결한 오방언(吳邦彦)이다.
[활동 사항]
오직은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6년에 선전관으로 비변사낭관을 겸하였으며, 1614년(광해군 6)에 군기시주부가 되었다. 1618년(광해군 10)에 명나라가 후금(後金) 정벌에 원병(援兵)을 보내 줄 것을 조선 정부에 요청해 오자, 우영천총(右營千摠)이 되어 원수 강홍립(姜弘立)과 함께 출정하였다. 1618년 오직은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로 승진하였고, 1619년 심하(深河) 부차령(富車嶺)에서 매복하고 있던 적 기병의 기습 공격을 받고 교전하던 중에 좌영천총 김좌룡(金佐龍), 선천군수 김응하(金應河), 운산군수 이계종(李繼宗), 영유현령 이유길(李有吉)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오직은 1636년(인조 14) 정려를 받고 병조참판으로 증직되었으며, 1759년(영조 35)에 병조판서로 증직되었다. 익산시 용안면 중신리에 있는 삼세오충렬사(三世五忠烈祠)에 오응정, 오욱, 오동량, 오방언과 함께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