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6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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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丁昌業 |
영어공식명칭 | Jeong Changeop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창주 |
출생 시기/일시 | 1847년 - 정창업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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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89년 - 정창업 사망 |
출생지 | 함평 - 전라남도 함평군 |
거주|이주지 | 내촌리 -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내촌리 |
성격 | 국악인 |
성별 | 남 |
본관 | 금성(錦城) |
대표 경력 | 통정대부 |
[정의]
개항기 익산 지역에 거주한 판소리 명창.
[개설]
정창업(丁昌業)[1847~1889]의 본관은 금성(錦城)이다. 아들은 명창 정학진(丁學珍)[1863~1912]이고, 손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인 정광수(丁珖秀)[1909~2003]이다.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2호 수궁가 보유자 정의진(丁意珍)이 증손녀이다.
[활동 사항]
정창업은 1847년(헌종 13) 함평에서 태어났다. 이후 지금의 익산시 망성면 내촌리로 이주해 살았다. 박만순, 김세종, 이날치의 후배이다.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 어려서부터 소리를 잘하였다. 신재효(申在孝)[1812~1884]에게 2년간 판소리 교육을 받고 전주대사습놀이에 출전하여 큰 명성을 얻었다.
정창업이 부른 「심청가」의 애절한 대목을 들은 관중들이 손으로 눈물을 닦아 뿌리는 바람에 비석에서 물이 흘러내렸는데, 이를 두고 “정창업의 소리에는 비석도 운다.”라는 말이 떠돌았다고 한다. 김창환(金昌煥)[1855~1937], 정정렬(丁貞烈)[1876~1938], 김정길(金正吉)[1875~1964] 등이 제자이다. 정창업은 1889년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정창업은 『조선창극사』에 서편제 명창으로 기록되어 있다. 「심청가」와 「홍보가」를 잘하였으며, 「심청가」 중 몽운사(夢雲寺) 화주승(化主僧)이 권선시주를 얻으러 산에서 내려오는 대목이 정창업의 더늠이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