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6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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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定順王后 |
영어공식명칭 | Queen Jeongs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범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이 본관인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정비.
[개설]
정순왕후(定順王后)[1440~1521]는 조선 제6대 임금 단종(端宗)[1441~1457]의 정비(正妃)이다.
[가계]
정순왕후의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부사 송계성(宋繼性)이고, 할아버지는 지중추원사 송복원(宋復元)이다. 아버지는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 송현수(宋玹壽)이며, 어머니는 여흥부부인(驪興府夫人)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세종(世宗)의 아들인 영응대군(永膺大君)의 부인 대방군부인(帶方府夫人) 여산송씨(礪山宋氏)가 고모이다.
[활동 사항]
정순왕후는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군 칠보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 송현수를 따라 한양으로 이주하였다. 1454년(단종 2) 1월 8일 창덕궁에서 열린 왕비 간택에 참석하여 최종 낙점되었고, 1월 24일 봉영(奉迎) 의식을 거행한 뒤 2월 19일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정순왕후가 책봉되었던 1454년 당시는 이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뒤였다.
1455년 단종은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넘겼고, 세조(世祖)가 즉위하여 단종이 상왕이 되자 정순왕후도 왕대비가 되어 ‘의덕왕대비(懿德王大妃)’라는 존호를 받았다. 1457년(세조 3) 김문기(金文起)·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이 세조를 제거하고 상왕인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해 거사를 준비하다가 실패하였다. 이 일로 단종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淸泠浦)에 유배되었다가 1457년 10월 24일 사망하였다.
군부인으로 신분이 강등되어 궁에서 나온 정순왕후는 시녀들의 동냥과 염색업을 하며 궁핍하게 살았다. 세조가 집과 식량을 내려주었음에도 받지 않았고, 이후 왕실 사찰인 정업원(淨業院)에서 비구니로 지내다가 1521년(중종 16) 사망하였다.
[묘소]
정순왕후의 묘소인 사릉(思陵)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산65-1에 있다. 시호는 의덕단량제경정순왕후(懿德端良齊敬定順王后)이다. 남편인 단종의 묘소인 장릉(莊陵)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133-1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81년(숙종 7) 단종이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追封)되고 1698년에 ‘단종’으로의 복위가 결정되자 여산송씨 또한 ‘정순왕후’로 추봉되었다. 정순왕후가 단종의 명복을 빌며 비구니로 지냈던 정업원 터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에 있다. 영조는 1774년(영조 47) 정순왕후의 옛 집터에 친필로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 새긴 비석을 세웠는데 이 비가 서있는 정업원터는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