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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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圭 |
영어공식명칭 | Im Kyu |
이칭/별칭 | 형여(亨如),우정(偶丁)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임혜영 |
출생 시기/일시 | 1863년 9월 23일 - 임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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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82년 - 임규 일본으로 건너감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2월 27일 - 임규 「독립선언서」와 「독립통고서」를 일본 수상과 의회에 우송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9일 - 임규 일본 경찰에 검거 |
몰년 시기/일시 | 1948년 3월 7일 - 임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임규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
출생지 | 동고도리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
학교|수학지 | 게이오의숙 중학교 - 일본 도쿄시 |
학교|수학지 | 게이오의숙 전수학교 - 일본 도쿄시 |
활동지 | 동경 - 일본 도쿄시 |
활동지 | 서울 - 서울특별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중동학교 교사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임규(林圭)[1867~1948]의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자는 형여(亨如), 호는 우정(偶丁)이다.
[활동 사항]
임규는 1863년 9월 2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 무렵 당시 익산군수이던 정기우(鄭基雨)의 잔심부름을 하는 통인으로 지내다가 1882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895년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중학교를 거쳐 1900년 게이오의숙 전수학교 경제과를 졸업하였으며, 1906년 귀국하였다. 귀국한 뒤에는 서울 중동학교 등에서 일본어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19년 3.1운동 준비 과정에 참여한 임규는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작성한 「독립선언서」, 「독립통고서」, 파리 평화회의와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보내는 「독립청원서」 중에서 「독립선언서」와 「독립통고서」를 일본 정부와 귀족원·중의원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1919년 2월 27일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와 「독립통고서」를 가지고 일본 도쿄에 도착한 임규는 문서를 일본 수상과 의회에 우송하였다. 1919년 3월 9일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임규는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본국으로 압송되었다. 미결수로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7개월간 옥고를 치르다 무죄로 석방되었다.
석방 후 해외로 망명한 임규는 러시아 극동 지방인 수이푼 지역의 기관에서 선전부원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3월 7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임규의 저서로는 시문집인 『북산산고(北山散稿)』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대한민국 정부는 임규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