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7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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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廷萬 |
영어공식명칭 | Seo Jungman |
이칭/별칭 | 서공유(徐公有)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상범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서정만(徐廷萬)[1889~1919]의 본관은 대구(大丘)이며, 서공유(徐公有)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서정만은 1889년 6월 13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익산군 오산면(五山面)[현 익산시 오산면]에서도 큰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서정만은 문용기(文容基)·박도현(朴道玄)·장경춘(張京春) 등의 주도로 전개된 4월 4일 이리 장날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기독교인과 학생 등 200여 명으로 시작된 만세 시위는 장터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1,00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군중으로 불어났다.
당시 이리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은 수백 명의 소방대원과 일본 농장원을 동원하여 칼과 곤봉, 갈퀴 등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해산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던 서정만은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서정만의 공적을 기려 1977년 대통령표창을,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