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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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容寬 |
영어공식명칭 | Jo Yongkwa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상범 |
출생 시기/일시 | 1885년 6월 29일 - 조용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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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0년 8월 - 조용관 군산노동공제회 창립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 조용관 군산노동연맹 대표로 활동하면서 조선노농총동맹 창립 집행위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25년 1월 - 조용관 군산민중운동자동맹 사건으로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형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10월 - 조용관 군산철도노동회 위원장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3월 - 조용관 군산노동연맹회 회장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9월 - 조용관 조선노동총동맹 중앙검사위원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12월 - 조용관 조선공산당 전북도당 결성 혐의로 일본 경찰에 검거 |
몰년 시기/일시 | 1950년 10월 3일 - 조용관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5년 - 조용관 건국포장 수훈 |
출생지 | 함열 -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
활동지 | 군산 - 전라북도 군산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군산노동연맹회 회장|조선노동총동맹 중앙검사위원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조용관(趙容寬)[1885~1950]은 1885년 6월 29일 지금의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익산 지역의 3.1운동의 주동자로 구속되어 고문을 받고 한쪽 눈을 실명했다고 한다.
1920년 8월 군산노동공제회(群山勞動共濟會)를 창립하였고, 1924년 군산노동연맹(群山勞動聯盟) 대표로 활동하면서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의 창립 집행위원을 역임하였다. 1925년 1월 군산민중운동자동맹(群山民衆運動者同盟) 사건으로 제령 제7호 위반, 출판법 위반 혐의로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군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조용관은 출감 후에도 노동운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1926년 10월 군산철도노동회(群山鐵道勞動會) 위원장, 1927년 3월에는 군산노동연맹회 회장에 선임되었다. 그해 5월에는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朝鮮社會團體中央協議會) 창립 대회에서 임시 의장으로서 회의를 주관하다가 체포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9월에는 조선노동총동맹 중앙검사위원에 선임되었다 1930년 12월에는 조선공산당 전북도당을 결성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다시 검거되기도 하였다. 조용관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0월 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5년 대한민국 정부는 조용관의 공적을 기려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함라초등학교에 조용관의 손자인 조상진이 제작하여 기탁한 흉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