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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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永鎭 |
영어공식명칭 | Park Youngji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정민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영진(朴永鎭)[1882~1928]은 1856년 5월 21일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 황화정[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황화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당시 천도교 익산교구장이었던 박영진은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익산교구의 임원과 교인들을 모아 독립운동의 실행 방법을 의논하였다. 이 자리에서 “지금 우리 교회의 교주 의암성사(義庵聖師)께서 우리 교인 14인과 야소교인 16인, 불교인 2인과 함께 3월 1일 조선 독립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우리 교인들이 기다리고 있던 일이니 모두들 ‘한울림’께 심고(心告)하고 일어나자.”라고 하였다. 박영진은 익산군내 기독교 세력과의 연락을 담당하여 황화면(皇華面)과 여산읍(礪山邑) 등지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1919년 4월 18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8년 12월 6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한민국 정부는 박영진의 공적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