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7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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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邊圭燮 |
영어공식명칭 | Byeon Gyuseop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상범 |
출생 시기/일시 | 1911년 3월 19일 - 변규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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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0년 7월 6일 - 변규섭 반일 격문을 금마면 일대에 게시하여 일본 경찰에 검거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8월 27일 - 변규섭 전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월형 언도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5월 11일 - 변규섭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3년 - 변규섭 건국포장 수훈 |
출생지 | 동고도리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
활동지 | 금마면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변규섭(邊圭燮)[1911~1945]은 1911년 3월 19일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 5월, 전주고보(全州高普)를 퇴학한 이석용(李碩鎔)을 만나 조국의 독립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청년 및 노동자 등 민중의 단결을 촉구하는 격문을 제작해서 7월 17일 금마면 장터에 게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후 7월 16일에 “우리 2,000만의 삶을 행하는 길을 누가 막겠는가. 이제 시간이 없다. 금마 동포여 단결하자!”라는 내용의 격문을 6매 작성하여 금마공립보통학교(金馬公立普通學校) 등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장소에 게시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변규섭은 1930년 8월 27일 전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5년 5월 1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 대한민국 정부는 변규섭의 공적을 기려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