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7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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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弘澤 |
영어공식명칭 | Shim Hongtae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성미 |
출생 시기/일시 | 1909년 6월 20일 - 심홍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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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26년 - 심홍택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입학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12월 - 심홍택 동맹휴학을 주도하여 일본 경찰에 검게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12월 - 심홍택 경성지방법원에서 진역 8월에 집행유예 4년형 언도 |
몰년 시기/일시 | 1959년 12월 20일 - 심홍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2년 - 심홍택 건국포장 수훈 |
출생지 | 삼기면 -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
학교|수학지 | 중앙고등보통학교 - 서울특별시 |
활동지 | 서울 - 서울특별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심홍택(沈弘澤)[1909~1959]은 1909년 6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에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동참하여 동맹휴교를 결심하였다.
심홍택은 1929년 12월 8일 강대성, 강상덕, 황한희 등과 함께 시위를 계획하고 “광주 학생 사건에 관련하여 검거된 자를 석방하라.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부여하라.” 등의 내용이 담긴 진정서 2통을 작성하여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 및 총독부 학무국장에게 전달하였다. 이튿날인 12월 9일에는 운동장에 학생들을 집결시킨 뒤 “광주 학생 만세”를 외치고 광주학생사건에 동참하여 동맹휴교를 단행하자는 연설을 하는 등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심홍택은 이 일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른 끝에 1930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4년형을 언도받았다. 1959년 12월 2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2년 대한민국 정부는 심홍택의 공적을 기려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