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792
한자 金海均
영어공식명칭 Kim Haekyu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김해균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9년 - 김해균 경성제국대학 예과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31년 9월 - 김해균 경성제국대학 경제학연구회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31년 10월 - 김해균 조선공산당재조직사건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 검거
수학 시기/일시 1934년 - 김해균 경성제국대학 예과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45년 8월 20일 - 김해균 조선공산당재건위원회 결성에 참여
출생지 함라 -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경성제국대학 - 서울특별시
활동지 서울 - 서울특별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해균(金海均)[1910~?]은 지금의 익산시 함라면에서 태어났다. 1929년 3월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하여 1934년 졸업하였다. 1931년 9월 경성제국대학 경제학연구회에 가입하여 사회주의사상을 학습하였다. 1931년 10월 조선공산당재조직사건에 연루되어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었지만 불기소 처분을 받고 11월 초에 석방되었다.

1945년 8월 20일 김해균은 거주하고 있던 명륜동 집에서 조선공산당재건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였다. 경성콤그룹사건 이후 도피생활을 하던 박헌영이 김해균의 집에 머물면서 김삼룡·이주상·이관술·이현상·정태식·김형선 등 경성콤그룹 출신들과 함께 조선공산당의 재건을 논의하였던 것이다. 김해균은 1946년 10월 중순에 벌어진 조선공산단위조지폐사건에도 연루되는 등 사회주의운동을 이어 나갔다. 이후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저술 및 작품]

김해균은 1930년 『조선일보』에 「그대여 웃어라」라는 시를 게재하였으며, 1934년 12월 12일부터 12월 18일까지 5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영국에 있어서의 고전주의 부흥」이라는 윈덤 루이스(Wyndham Lewis)의 글을 번역하여 기고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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