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794
한자 張準錫
영어공식명칭 Jang Junseok
이칭/별칭 천운(天圓)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3년연표보기 - 장준석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1년 - 일본 니혼대학교 퇴학
활동 시기/일시 1931년 - 장준석 1931년 신간회 동경지부 상임위원과 재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 대표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31년 9월 - 장준석 지세상회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40년 - 장준석 전라북도 평의원으로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42년 - 장준석 동진수리조합 평의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장준석 수리조합법개정추진위원회 위원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62년 - 장준석 화성학원 이사장 역임
몰년 시기/일시 1962년연표보기 - 장준석 사망
출생지 김제 - 전라북도 김제시
거주|이주지 김제 - 전라북도 김제시
거주|이주지 익산 - 전라북도 익산시
학교|수학지 니혼대학교 - 일본 도쿄시
활동지 김제 - 전라북도 김제시
활동지 익산 - 전라북도 익산시
성격 사회운동가|독립운동가
성별
본관 인동(仁同)
대표 경력 독립신문 북경지국장|신간회 동경지부 상임위원|재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 대표|전라북도 평의원|동진수리조합장|화성학원 이사장

[정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가계]

장준석(張準錫)[1903~1962]의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호는 천운(天圓)이다. 아버지는 감찰(監察)을 지낸 장치명(張致明)이다.

[활동 사항]

장준석은 1903년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에서 태어났다. 경성 중동학교(中東學校)를 졸업한 후 중국 북경(北京)으로 건너가 평민대학(平民大學)을 다녔다. 장준석은 『독립신문(獨立新聞)』 북경지국장을 겸임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5년 국내로 들어와 조선일보사 경리부원으로 근무하였다.

1929년경 일본 동경에 있는 니혼대학교[日本大學校] 문과에 입학한 장준석은 신간회(新幹會) 동경지부 상임위원과 재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 대표를 지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투옥되었고, 대학에서도 퇴학을 당하였다.

장준석은 1931년 귀국하여 농촌 개발에 전념하였고, 9월에는 지세상회를 설립하여 정미업을 시작하였다. 1940년 전라북도 평의원에 선출된 후 일본인에 대항하여 싸웠고, 1942년에는 동진수리조합 평의원이 되어 농민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섰다. 이 밖에도 수방단 부장, 곡물재량조합 평의원, 만경금융조합 평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에도 장준석은 1957년 수리조합법 개정추진위원장, 1960년 동진수리조합장 등을 역임하였다. 교육 문제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장준석은 1951년 이리 남성중고등학교 후원회장을, 1962년에는 화성학원(華星學院) 이사장을 지냈다. 1962년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 『익산시사』3(익산시사편찬위원회, 2001)
  • 호남기록문화유산(http://www.memoryho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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