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822 |
---|---|
한자 | 吳德根 |
영어공식명칭 | Oh Deokgeun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상범 |
출생 시기/일시 | 1861년 - 오덕근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7년 12월 - 오덕근 고현교회 장로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오덕근 만세 시위에 참가로 일본 경찰에 검거 |
추모 시기/일시 | 1950년 - 오덕근 사망 |
출생지 | 서산 - 충청남도 서산시 |
활동지 | 고현교회 - 전라북도 익산시 선화로 125[모현동1가 470-1] |
성격 | 독립운동가|종교인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고현교회 장로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개설]
오덕근(吳德根)[1861~1950]의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오길영(吳吉泳)이다. 여동생은 오덕순(吳德順)이고, 아들은 오성환(吳成煥)이다.
[활동 사항]
오덕근은 1861년 지금의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오길영이 고창군수로 부임하면서 전라도로 이주하였다. 오덕근이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는 오덕근과 여동생 오덕순을 데리고 고향인 서산으로 향하였는데, 익산 부근에서 하인들이 이삿짐을 가지고 도망가는 바람에 고현리의 외딴집 사랑채에서 밭일을 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 훗날 여동생인 오덕순과 결혼하여 매부가 된 김자윤(金子允)의 권유로 고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1917년 12월 오덕근과 김자윤은 고현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1919년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때 오덕근은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며 만세 시위에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익산경찰서에 수감되었다. 오덕근은 옥고를 치르며 조국의 독립과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며, 출옥 후 사재를 일부 정리하여 사립백동학교(私立栢東學校)를 설립하였다. 또한 청년 집사 김한규와 함께 계문학교(啓文學校)를 설립하였고, 경신학교(敬信學校)를 세워 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하다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당하기도 하였다. 오덕근은 1950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1가 470-1 고현교회 내에 오덕근을 기리는 충헌비(忠獻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