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1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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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湖南-穀倉地帶-僧兵長處英- |
영어공식명칭 | Cheoyeong, a Buddhist Sergeant who Guarded the Granaries of the Honam Regio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현대/현대 |
집필자 | 한정훈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1년 8월 11일 -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킨 승병장 처영 스님」 숭림사 승려 지광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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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1년 -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킨 승병장 처영 스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설화 편에 수록 |
관련 지명 | 숭림사 -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백제로 495-57[송천리 5] |
관련 지명 | 금산사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
채록지 | 숭림사 -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백제로 495-57[송천리 5]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처영|권율 |
모티프 유형 |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처영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전하여 내려오는 승려 처영에 대한 이야기.
[개설]
처영(處英)은 임진왜란(壬辰倭亂)[1592] 당시 활약한 승병장(僧兵長)이다. 호는 뇌묵(雷默)이며,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1520~1604]의 제자이다. 한국의 승려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승군(僧軍)을 조직하여 군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관군들이 계속 패퇴하자 승려들은 승군(僧軍)을 조직하여 왜군에 맞서 싸웠다. 휴정, 사명당(泗溟堂) 유정(惟政)[1544~1610], 영규(靈圭)[?~1592], 처영 등은 임진왜란 당시 이름을 떨친 승병장들이다.
광주목사 권율(權慄)[1537~1599]은 한양을 점령하고 전라도를 침입하여 오는 왜군을 간신히 막아 냈다. 권율은 한양을 수복하기 위하여서 군사를 모집하였고, 이때 해남에서 기병한 처영이 승군 1,000명을 데리고 합류하였다. 처영은 권율을 도와서 행주산성(幸州山城)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고, 조정은 처영에게 절충장군(折衝將軍)이라는 직함을 내렸다. 정조(正祖)[1776~1800]는 왕명으로 휴정, 유정과 함께 처영의 진영을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표충사(表忠祠)와 묘향산(妙香山) 수충사(酬忠祠)에 봉안하고, 봄가을로 제를 올리게 하였다.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킨 승병장 처영 스님」은 전라북도 익산시에 전하여 내려오는 승려 처영의 활약에 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킨 승병장 처영스님」은 2011년 8월 11일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숭림사의 승려 지광에게서 채록하였다.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킨 승병장 처영 스님」은 2011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설화 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사명당과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지킨 승병장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명당과 서산대사 이외에 호남 지역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친 승병장이 바로 처영이다. 전하여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처영은 김제 금산사(金山寺)에서 출가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처영은 위기에 빠진 조선과 전라도를 구하기 위하여서 승병을 모집하였다. 왜군은 조선의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하여서 몰려왔다. 처영은 금산사와 숭림사(崇林寺)를 본거지로 하여 금강을 이용하여서 침략하여 오는 왜군을 막아 냈다. 만약 전라도가 왜군의 손에 들어갔다면 조선은 망하였을 것이다. 처영은 사명당과 서산대사 못지않게 큰 활약을 하였고, 금산사는 처영을 기리기 위하여서 2019년 처영문화기념관을 건립하였다.
[모티프 분석]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킨 승병장 처영 스님」은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설화라기보다는 인물평에 해당된다. 인물 담론에 해당하는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킨 승병장 처영 스님」은 사명당과 서산대사 못지않게 활약한 호남 지역의 승려 처영에 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