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1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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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慈王-失政ㅡ百濟ㅡ滅亡 |
영어공식명칭 | The Wrong Politics of King UiJa and the Fall of Baekj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덕민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1년 8월 - 「의자왕의 실정과 백제의 멸망」 익산시 금마면에서 정병갑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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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1년 - 「의자왕의 실정과 백제의 멸망」 『한국구비문학대계』 설화 편에 수록 |
관련 지명 | 익산시 - 전라북도 익산시 |
채록지 | 금마면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
성격 | 설화|민담 |
주요 등장 인물 | 의자왕|흥수|성충|계백|김유신 |
모티프 유형 | 의자왕의 방탕한 생활과 백제의 멸망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백제 의자왕에 관한 설화.
[개설]
「의자왕의 실정과 백제의 멸망」은 의자왕(義慈王)[?~660]의 방탕한 생활과 신라 김유신(金庾信)[595~673]의 계책 등을 중심으로 백제의 멸망 과정을 그리고 있는 설화이다.
[채록/수집 상황]
「의자왕의 실정과 백제의 멸망」은 2011년 8월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제보자 정병갑에게서 채록되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설화 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백제 의자왕은 일찍이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의자왕이 왕위에 오르자 백성들 역시 방탕하게 살았다. 신라의 김유신 장군은 무녀 80명을 골라 의자왕에게 보냈다. 김유신은 무녀들에게 의자왕을 유혹하여 백제를 망하게 하면 금은보화를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무녀들은 의자왕을 유혹하는 데 성공하였고, 의자왕은 더욱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김유신은 이제 백제의 두 장군 흥수(興首)[?~?]와 성충(成忠)[605~656]만 제거하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두 장군은 천하사를 다 아는 유능한 장군이었고, 의자왕에게 5만 군대를 양성하고 골짜기에다가 진을 치라고 충언을 하였지만, 무녀들의 꼬임에 넘어간 의자왕은 듣지 않고 두 장군을 귀양 보냈다.
신라가 당나라와 함께 50만 병사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백제의 장군 계백(階伯)[?~660]은 5만 병사로 맞서 싸우다 황산벌에서 전사하였다. 신라군이 부여로 들어오자 의자왕을 모시던 삼천궁녀들은 낙화암에서 떨어져 모두 죽었다. 이때 백제 멸망의 징후가 있었으니, 여우가 궁궐 안으로 들어와 울고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변이 생겼다고 한다. 여우 같은 요물이 궁궐에 들어와 매일 울었으니 나라가 망할 수 밖에 없었다. 백제를 빼앗긴 의자왕과 첫째 왕자는 지리산 달궁으로 쫓겨났다. 백제는 그렇게 끝이 났다.
[모티프 분석]
「의자왕의 실정과 백제의 멸망」의 주요 모티프는 ‘의자왕의 방탕한 생활과 백제의 몰락’이다. 백제의 멸망에 대한 주요 문헌정보인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1948], 『삼국사기(三國史記)』[1145] 등에 포함된 내용과 민간에서 전하여지는 얘기가 종합되어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