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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홍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246
한자 申才弘
영어음역 Sin Jaeh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연평리 1695
시대 근대/근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연평리 1695 지도보기
성별
생년 1900년(고종 37)연표보기
몰년 1946년연표보기
본관 평산
대표경력 영흥학교 교사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우도(牛島)의 첫 기독교 신자로 목사 이경필(李敬弼)에게 세례를 받았다. 성안교회에 부설된 여아(女兒) 교육 기관인 영흥학교의 교사로 재임하였다. 1927년 8월 조선공산당원이며 고려공산청년회 전라남도 책임자였던 김재명(金在明)의 권유로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30년 3월 구좌읍 일대에서 혁우동맹이 결성되었을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사회주의 이념 하에 민족 해방을 목표로 하던 혁우동맹이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강창보(姜昌輔)가 출감하여 1931년 4월 정식으로 해체하였다.

1931년 5월 15일 애월리에 있는 김원희(金元熙) 집에서 신재홍강창보·오대진(吳大進) 등과 더불어 조선공산당 제주도 야체이카를 조직하였다. 신재홍구좌읍·성산읍·표선면·남원면을 담당 지역으로 세력을 확산하였는데, 구좌읍 지역의 야체이카 활동이 가장 활발하였다.

1931년 11월 7일 산지항의 축항 공사장 노동자들의 파업과 1931년 1월 12일 구좌읍 해녀 항쟁은 제주도 야체이카의 항일 노선과 일치하고 있었다. 전자는 강창보의 지시가 김두경(金斗璟)이 하순철(河順哲)에게 전달되면서 일어난 항일 투쟁이었고, 후자는 신재홍의 지시가 오문규(吳文奎)와 문도배(文道培)에게 전달되면서 일어난 항일 투쟁이었다.

1932년 3월 제주도 청년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있을 때 체포되어 1933년 2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아 항소하였고, 1933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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