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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곡사칠층석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447
한자 深谷寺七層石塔
영어공식명칭 Seven-storied Stone Pagoda in Iksan Simgoksa Temple
이칭/별칭 익산 심곡사칠층석탑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장암길 113[낭산리 176]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안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9세기 - 심곡사칠층석탑 이건
문화재 지정 일시 2001년 9월 21일연표보기 - 심곡사칠층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92호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2년 6월 - 심곡사칠층석탑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2년 6월 - 심곡사칠층석탑 해체, 수리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심곡사칠층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심곡사 -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장암길 113[낭산리 176]지도보기
원소재지 심곡사 인근 -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장암길 113[낭산리 176]
성격 석탑
양식 칠층석탑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366㎝[총 높이]|16㎝[기단 높이]|250㎝[탑신 높이]
소유자 심곡사
관리자 심곡사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심곡사에 있는 조선 전기 칠층석탑.

[개설]

심곡사칠층석탑(深谷寺七層石塔)심곡사 대웅전 앞에 세워져 있는 칠층석탑이다. 심곡사칠층석탑은 단층의 기단 위에 칠층의 석탑을 세웠는데, 지대석과 지복석 위에 방형의 기단이 놓여 있고 칠층의 탑신과 옥개석 및 보주형의 상륜이 올려진 구조를 하고 있다. 2012년 6월 심곡사칠층석탑의 해체와 수리 작업 중 상층기단 사리구멍에서 조선 시대 백자항아리와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전기에 조성된 금동불 2구가 발견되었고, 지대석 사리구멍에서는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에 조성된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이 발견되었다. 다양하고 시대가 다른 사리갖춤이 봉안된 이유는 탑을 이건하는 과정에서 원래 탑에 있던 것이나 사찰에 전승되던 것을 새로운 사리갖춤과 공양품을 함께 봉안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심곡사칠층석탑은 2001년 9월 21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9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심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로 통일신라 문성왕(文聖王)[재위 839~856] 때 무염대사(無染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19세기에 승려 허주(虛舟)가 현재의 위치에서 200m쯤 떨어진 산등성이에서 이건하여 중건하였다. 심곡사칠층석탑 또한 사찰 중건 시기에 같이 옮겨 와 대웅전 앞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위치]

심곡사칠층석탑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176 심곡사 대웅전 마당에 있다.

[형태]

심곡사칠층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칠층의 탑신부를 형성하고, 정상에 상륜을 장식한 형식이다. 기단은 사각형의 기단석에 정교한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기단면석은 한 개의 돌로 조성하고 위에 갑석 1매가 놓여 있는데 갑석 부연 부분에는 앙련(仰蓮)이 장식되어 있다. 기단부의 복련과 앙련은 같은 형식이며 복련에는 연판 끝에 귀꽃문이 장식되어 있다. 갑석 상면에는 탑신부가 놓여 있고 각 층의 탑신석과 옥개석은 하나의 돌로 만들고 옥개석 끝을 추녀와 같이 위로 올려진 모습이다. 옥개석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이 있고 칠층 옥개석만 2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륜부에는 보주형의 석재가 올려져 있다. 심곡사칠층석탑의 총 높이는 366㎝이고, 기단 높이는 16㎝이며, 탑신 높이는 250㎝이다.

[현황]

심곡사칠층석탑은 탑의 잔존 상태는 양호하지만 기단부와 옥개석 일부에 파손과 보수한 흔적이 있다. 야외에 노출되어 있어 오염물로 인한 변색과 풍화 흔적이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심곡사칠층석탑은 옥개석의 백제 탑 양식과 고려 시대 연화대좌 형식을 계승한 기단부, 조선 시대 탑의 옥개석 받침의 양식 등이 모두 반영되어 있는 조선 전기의 석탑으로 익산 지역 석탑 변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또한 탑의 내부에서 다양하고 시대가 다른 사리갖춤이 발견되어 탑을 이건하거나 재건할 때 사리갖춤과 공양품을 봉안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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