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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963
한자 自鳴寺
영어공식명칭 Ja Myong Sa/Ja Myong Sa Temple
이칭/별칭 자웅사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을동길 76-12[법성리 279]
시대 신라-근대
집필자 김귀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678년 - 자웅사 창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943년 - 자명사 승려 진명이 중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991년 - 자명사 주지 법화가 대웅전과 요사 중수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5월 30일 - 자명사 대웅전 목조여래좌상 익산시 향토유적 제3호 지정
최초 건립지 자웅사 -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을동길 76-12[법성리 279]
현 소재지 자명사 -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을동길 76-12[법성리 279]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승려 선설
전화 063-861-3542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법성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1943년에 승려 진명(振明)이 자명사를 중건하고 1944년 사찰 동쪽 입구에 세운 사적비에 따르면 자명사는 신라 시대인 678년(문무왕 18)에 승려 선설(禪說)이 창건하였고 당시 이름은 ‘자웅사(自雄寺)’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후의 연혁은 전하는 것이 없으며, 그 뒤 조선 시대에 용안읍에 사는 권세가 민인재(閔隣宰)가 자웅사에서 소 우는 소리가 읍내에까지 퍼지는 꿈을 꾸고는 기이하게 생각하여 절의 이름을 ‘자명사’로 고쳤다고 한다.

그 뒤 승려 기혜·신봉·성암 등이 이어서 중수하였고, 근래에 와서는 1943년에 승려 진명이 중건을 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승려 법화가 주지로 부임하여 1991년에 대웅전을 중수하고 요사도 고쳐 지었다. 현재 사찰 경내에 신라 시대의 유물이 전하는 것은 없지만 주변에서 발견되는 기와, 토기편 등의 유물 등이 오랜 역사를 지닌 고찰임을 증명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10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전라북도조사재료』에는 건립 연대는 미상이나 승려 1, 불상[금불 2, 목불 2], 전답 14두락, 산림, 건물 3동 7칸, 수입 40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자명사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우슬산에 자리한 작은 산사로 비구니 수행 정진 도량이다. 자명사 경내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삼성각과 범종각이 있고, 그 외에 요사채 2동과 쌍사자 석등 등이 있다.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2002년 5월 30일 익산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된 자명사 대웅전 목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삼성각 안에는 칠성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 등이 모셔져 있다.

[관련 문화재]

익산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된 자명사 대웅전 목조여래좌상은 전체 높이는 94㎝이고, 목조에 도금을 한 좌불상(坐佛像)이다. 고개를 약간 숙인 불신의 형태와 가슴을 넓게 틔운 불의의 모습,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사각형의 신체 표현 등의 형태로 볼 때 조선 후기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자명사 대웅전 목조여래좌상은 2001년 4월 보안상의 이유로 김제시 모악산에 있는 금산사(金山寺)에 위탁하였다가 2009년 4월 자명사에서 다시 환수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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