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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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열녀. 김소사(金召史)[?~?]는 업무(業武) 방한창(方漢昌)의 부인이다. ‘소사’는 당시 양민의 아내나 과부를 이르는 호칭이며, 실명은 알 수 없다. 김소사는 열 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길쌈과 품팔이를 하며 홀로 남은 어머니를 봉양하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방한창과의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를 극진하게 모셨다. 결혼한 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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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동헌 건물. 여산은 조선 초기 여량과 낭산을 합쳐 여산현이 되었다. 1436년(세종 18)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의 고향이라 하여 군(郡)으로 승격되어 충청도에 속하였다가, 1444년(세종 26) 다시 전라도로 복귀되었다. 1699년(숙종 25) 단종 비 정순왕후의 관향(貫鄕)이라 하여 여산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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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여산동헌에 있는 수령 약 600년의 느티나무. 여산동헌의 느티나무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동헌 주변에 느티나무와 팽나무 등 7그루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여산동헌이 만들어질 때 심은 것으로 추측한다. 여산동헌의 느티나무는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여산동헌 서쪽 끝에 있으며, 수령은 약 6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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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여산리(礪山里)는 과거에 여산군 군내면(郡內面)의 행정 사무를 담당하던 치소(治所)가 있던 곳이었다. ‘여산(礪山)’이란 지명은 여량(礪良)과 낭산(朗山)에서 한 자씩을 따 붙여 지어진 것으로 전해 진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주막리(酒幕里), 북변리(北邊里), 창전리(倉前里), 화류리(花柳里), 파청리(把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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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 속하는 법정면. 전라북도 익산시의 동부에 있는 면으로, 면 소재지인 여산리와 두여리, 원수리, 제남리, 태성리, 호산리 등 6개의 법정리를 두고 있다. 동쪽으로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화산면, 서쪽으로 익산시 낭산면·금마면, 남쪽으로 익산시 왕궁면, 북쪽으로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과 접하고 있다. 여산(礪山)은 여량현(礪良縣)과 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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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에 있는 천주교 순교 성지. 여산백지사터 성지는 병인박해 당시 전라도 여산군의 속읍(屬邑)이었던 고산, 금산, 진산 등의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장소이다. ‘백지사(白紙死)’는 얼굴의 물을 뿌리고 한지를 여러 번 붙여 질식시켜 죽이는 방법으로 ‘도모지사(塗貌紙死)’라고도 한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1983년 12월 16일 여산동헌 앞 백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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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에 있는 천주교 순교 성지.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1820~1898]이 섭정(攝政)으로 조선을 통치하던 시기, 흥선대원군은 강력한 쇄국정책(鎖國政策)을 펼쳤다. 서양과 일본 등의 지속적인 교섭 요구가 궁극적으로는 왕조(王朝)를 뒤흔들고 국가의 자주권을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더구나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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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여산동헌에 있는 척화비. 여산척화비(礪山斥和碑)는 1866년 병인양요 이후 서양 제국이 개항을 요구하는 가운데 1871년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흥선대원군이 서양 제국에 대한 항전 의식을 고양하기 위하여 전국 여러 곳에 세운 석비 중 하나이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일본공사관의 요구로 철거되었다가 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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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지역민들이 살았던 전통 가옥의 형태 및 구조. 익산 지역의 주생활은 전형적인 민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익산 지역의 평야지대라는 자연환경은 독자적인 문화권을 이루었고, 주거 형태는 농촌 민가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일식 가옥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이리역폭발사고’를 겪으며 판자집 촌이 아파트로 변모하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