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024
한자 益山市
영어공식명칭 Iksan-s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미영

[정의]

전라북도에 속하는 시.

[개설]

전라북도 익산시는 마한과 백제의 위대한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관광도시이자, 전국으로 연결되는 사통팔달의 교통망과 산업단지를 구축하고 있는 산업도시이다. 백제 무왕의 천도지인 익산 왕궁리 유적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이 있는 익산시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을 비롯한 국보급 유물 505점이 출토되었다. 또한 대한민국 식품산업의 메카이자 아시아 식품 수도로 거듭나고 있다.

익산시의 시조는 비둘기이다. 비둘기는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텃새로,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며, 다정하고 화합하는 시민정신을 상징한다. 시화는 불로장수를 상징하는 상서로운 영초인 국화이다. 국화는 시민 생활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고, 강한 번식력과 적응성으로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어, 시의 발전과 진취적인 기상을 담고 있다. 시목은 미륵산을 비롯한 시 전역에 자생하는 소나무로 꿋꿋한 기상과 굳센 시민정신을 나타낸다.

[변천]

익산시는 백제 때 금마저(金馬渚)로 불렸다. 백제사에서 익산이 가장 부각된 시기는 7세기 무왕 대로, 이때 왕궁과 미륵사가 건립되었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668년 금마에 보덕국(報德國)을 세웠다. 보덕국왕으로 고구려 유민인 안승(安勝)을 임명하지만 반란을 구실로 683년 보덕국을 폐하였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금마군(金馬郡)으로 변경되어 옥야현을 영속시켰다.

고려 시대에는 전주목(全州牧) 관할 하에 금마군·여량현·낭산현·함열현·옥야현·도내산소(道乃山所) 등이 속군현을 이루었다. 1344년(충혜왕 복위 5) 원나라 순제 황후 기씨(奇氏)의 외향이라 하여, 금마군이 익주(益州)로 승격되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 전라도는 1부[전주] 4목 7도호부 12군 31현으로 구분된다. 이때 익주는 익산군(益山郡)으로 이름이 변경되고 여산도호부는 여산군(礪山郡), 함열현은 함열군(咸悅郡), 용안현은 용안군(龍安郡)으로 각각 명칭이 변경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부령 제111호[1913년 12월 29일 공포]를 시행하여 함열군, 용안군, 여산군이 익산군으로 편입되었다. 1931년 4월 1일 익산군이 익산읍으로 승격되었으나, 11월 1일 익산읍이 이리읍으로 변경된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인 1947년 2월 23에는 이리읍이 이리부로 승격되면서 익산군과 분리되었다.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법」이 실시되면서 이리부가 이리시로 개칭된다. 이후 관할하는 지역의 변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다가, 1995년 법률 제4948호[1995년 5월 10일 공포]에 따라, 이리시와 익산군을 통합하여 전라북도 익산시가 된다.

[위치와 면적]

익산시는 한반도의 남서부, 전라북도의 서북단에 있다. 익산시의 경도와 위도상의 위치는 동단[익산시 여산면 태성리 누항마을] 동경 127°08′30″, 서단[익산시 오산면 신지리 옥포마을] 동경 126°51′10″, 북단[익산시 용안면 용두리 용두마을] 북위 36°09′20″, 남단[익산시 춘포면 춘포리 구담마을] 북위 35°52′50″이다.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되면서 설치된 익산시는 형정상으로 12동 1읍 14면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총면적은 506.98㎢이다.

[인구]

2018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익산시의 인구는 총 28만 6096명이다. 이 중에서 남자는 14만 2534명이고 여자는 14만 3562명이다. 남녀의 인구가 비교적 균등하다고 볼 수 있다. 총인구를 14개 동, 1개 읍, 14개 면으로 살펴보면, 14개 동의 인구는 22만 6411명으로, 남자 11만 2348명, 여자 11만 4063명이다. 1개 읍의 인구는 7,134명으로, 남자 3,505명, 여자 3,629명이다. 14개 면의 인구는 5만 2551명으로, 남자 2만 6681명, 여자 2만 5870명이다.

[산업]

익산시는 전형적인 농촌의 성격을 띤 도시였다. 일제 강점기에 철도와 도로가 건설되면서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익산시의 산업은 교통을 중심으로 발달하여 왔다. 익산시는 남북으로 중앙을 관통하는 호남선, 동서로 교차하여 지나가는 전라선과 군산선이 있는 교통 중심 도시이다. 또한 국도1호선, 국도23호선 등 전국으로 진출할 수 있는 편리한 교통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익산시는 산지가 낮고 적으며, 평지가 많은 자연환경을 형성하고 있어 산업이 발전하기에 적합하다. 이러한 익산시의 지리적 요건과 자연환경적 특성은 산업단지에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익산시는 도농 복합도시를 형성하면서 농업과 공업이 균형 있게 발전되고 있다.

익산시의 사업체는 농업, 어업, 광업, 제조업, 임업 등 19개 업종으로 분류된다. 2017년 기준으로 익산시의 총 사업체는 2만 2885개이다. 도매 및 소매업이 6,143개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숙박 및 음식점업이 3,804개, 제조업이 2,512개이다. 종사자 수는 제조업 2만 4661명, 도매 및 소매업 1만 5343명,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이 1만 1822명, 교육서비스업이 1만 146명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조업이 일자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서비스업종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익산시의 산업단지는 제1국가산업단지, 제2일반산업단지, 제3일반산업단지, 외국인부품전용공단, 제4일반산업단지, 농공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관리하는 제1국가산업단지전라북도 익산시 영등동에 있다. 1973년부터 1974년까지의 조성 기간을 거쳐 133만 6000㎡의 규모로 형성되었다. 2019년 6월 28일 기준으로 239개 업체가 등록되어 있다. 제1국가산업단지에서는 자동차 부품, 전기전자, 조립 금속 등을 주 업종으로 하고 있다.

익산시청[투자유치과]에서 관리하는 제2일반산업단지전라북도 익산시 팔봉동에 있다. 3차의 조성 기간을 거처 330만 9000㎡의 규모로 형성되었다. 자동차 부품, 기계 조립, 전기전자, 화학 등 업종의 업체가 2019년 6월 28일 기준으로 185개 입주하여 있다.

제2일반산업단지와 마찬가지로 익산시청[투자유치과]에서 관리하는 제3일반산업단지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오룡리에 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공사를 진행하여, 279만 6000㎡의 규모의 단지를 조성하게 되었다. 제3일반산업단지는 교통물류의 최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전라북도 T자형[군산-익산-완주-전주-정읍] 전략 산업벨트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2019년 9월 26일 기준으로 제3일반산업단지에 등록한 업체는 57개이다. 제3일반산업단지 내에는 외국인부품전용공단이 형성되어 있다. 외국인부품전용공단에는 외국인 단독 투자 기업이거나, 외국인투자 지분 30%이상인 외국인투자 기업 조건을 충족하였을 때 입주할 수 있다.

제4일반산업단지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 다송리에 있으며, 익산시청[투자유치과]에서 관리하고 있다. 제4일반산업단지에 입주한 업종은 의료 정밀 광학기기, 버건업, 연구개발업, 화합물 화학제품, 음식료품 등으로, 2019년 9월 26일 기준으로 9개 업체가 등록되어 있다.

익산시의 농공단지는 황등농공단지, 낭산농공단지, 삼기농공단지, 왕궁농공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교통]

익산시는 사통팔달의 도시답게,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있다.

익산시의 철로는 호남선전라선, 장항선이 교차한다. 호남지방 철도의 중심에 익산시가 위치하고 있다. 고속선이 없던 호남지방에 2015년에 개통된 호남고속선은 익산이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견고하게 하는데 일조하였다.

익산시의 도로는 전주~공주, 익산~강경, 전주~강경 사이의 국도가 있으며, 호남고속도로가 통과한다. 1980년에 금마에 고속도로 IC가 생기면서 전라도 내 3개의 시와 직결되었다. 1995년에는 전라북도 교통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1,345억 원을 투자하여 122개의 도로를 신설 및 확장[포장 포함]하는 사업을 하였다.

[관광]

익산의 관광은 동부, 서부, 남부, 북부로 나누어서 다채롭게 향유할 수 있다.

동부권에는 익산 미륵사지, 익산 쌍릉, 심곡사, 가람 이병기선생 생가, 익산 왕궁리 유적, 보석박물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동부권에서는 백제 역사유적 탐방을 키워드로 관광을 즐길 수 있다. 동부권에서는 서동선화의 이야기, 보석과 관련한 정보 습득, 가족이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익산 미륵사지는 백제 무왕 대[600~641]에 미륵신앙을 구현하기 위하여 창건된 백제 최대의 사찰이다. 2019년 현재 익산 미륵사지백제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되어 있다. 익산 쌍릉은 백제 말에 성행하던 굴식돌방무덤이다. 두 봉분이 약 200m의 간격을 두고 자리하고 있다. 북쪽 무덤은 대왕릉, 남쪽 무덤은 소왕릉으로 알려져 있다. 심곡사 대웅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87호]에는 심곡사 목조삼존불좌상[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52호]이 있다. 시조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가람 이병기[1891~1968]가 태어나 살던 생가에서는 선비 가옥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병기 생가 탱자나무[전라북도 기념물 제112호]는 또 하나의 볼거리이다.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은 백제 무왕의 천도설 또는 별도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 등이 전해지는 유적이다. 보석박물관에는 보석과 원석 등이 11만여 점 이상 소장되어 있다. 또한 화석전시관을 통하여 지질시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서부권에서는 자연생태를 주제로 관광을 할 수 있다. 서부권에서는 금강함라산을 배경으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서부권에는 입점리고분전시관, 함라한옥체험관, 익산산림문화체험관, 웅포곰개나루가 있다. 입점리고분전시관익산시 웅포면 입점리에 2004년 4월 21일 개관하였다. 입점리고분전시관에는 웅포리 고분군에서 출토한 유물을 전시 중이다. 입점리고분전시관 뒤에 있는 익산 입점리 고분군[사적 제347호]에서는 백제인의 삶을 느낄 수 있다. 1986년 2월에 우연히 발견되었고, 총 8기의 무덤이 조사되어 상당수의 유물을 수습하였다. 함라한옥체험관은 전통 주거문화 체험을 통하여 현대인들에게 휴식 공간과 시간을 제공한다. 또한 다례 문화, 선비문화 체험, 예절 교실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익산산림문화체험관은 익산산림조합이 운영하는 곳으로, 최북단 녹차밭에서 체험 프로그램과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함라산 둘레길과 연결되어 있어 자연을 만끽하면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웅포곰개나루는 강과 산이 어우러진 곳으로, 서해 낙조의 5선 중 하나인 금강낙조를 볼 수 있다.

남부권은 익산의 시내를 관광할 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남부권에는 원불교 익산성지, 북부시장, 중앙시장, 매일시장, 서동시장, 익산 문화예술의 거리, 춘포역사 등이 있다. 북부시장은 우리나라의 대규모 전통시장 중 하나이다. 1975년에 개설하여 4일, 9일에 장이 들어선다. 익산 문화예술의 거리는 익산시 중앙로 일대를 모든 문화예술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 되기를 희망하며 추진한 사업의 결과물이다. 익산 문화예술의 거리에서는 거리 콘텐츠 프로그램, 거점 공간 활성화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거리 활성화를 위한 임대 지원 및 음식점 임대 지원, 주민 월례 회의 및 팸투어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인 익산 구 춘포역사[국가등록문화재 제210호]는 소규모 철도역사의 전형을 잘 보여 준다.

원불교 익산성지원불교 중앙총부가 자리 잡은 전법성지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1924년에 총부를 건설한 후 전법활동을 하고 18년간 교화경륜을 펼치다 열반에 든 곳이기도 하다. 원불교 익산성지원불교 교도뿐만 아니라 누구나가 방문하여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다.

북부권은 농촌체험을 하고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북부권에는 성당포구 금강체험관, 성당포구 바람개비길, 나바위성당, 숭림사, 익산교도소세트장, 고스락, 두동교회 등이 있다. 성당포구마을에는 금강체험관과 바람개비길이 있다. 성당포구 금강체험관에서는 금강의 생태를 배울 수 있으며, 성당포구에서의 삶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성당포구 주변에 형성된 바람개비길을 걸으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나바위성당[사적 제318호]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성당이다. 숭림사는 익산 지역의 대표 사찰로, 1345년(충목왕 1)에 창건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보광전을 제외하고 모두 소실되었으며, 이후 우화루, 나한전, 영원전 등이 새로 지어졌다. 익산교도소세트장은 국내 유일의 교도소 세트장으로, 폐교된 초등학교 자리에 지어졌다. 우리나라 영화, 드라마 등의 교도소 촬영은 대부분 익산교도소세트장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익산교도소세트장에서는 죄수복과 경찰복을 대여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으뜸과 정상을 이르는 말인 고스락익산시 함열읍 다송리에 있다. 2만여 평[약 6만 6116㎡]의 자리에 놓여 있는 3,500여 개의 전통 항아리를 구경할 수 있으며, 전통장을 구매할 수도 있다. 두동교회[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9호]는 박재신에 의해 1923년에 설립되었다. 1929년 건축된 ‘ㄱ’예배당은 남녀유별이라는 전통과 서양종교의 결합을 드러내는 독특한 건축양식이 특징적이다.

[교육]

익산시의 근대 이전 교육은 향교와 서원을 중심으로 한 전통교육이 대표적이다. 익산시의 전통교육 기관 중 향교는 여산향교, 익산향교, 용안향교, 함열향교가 있다. 서원은 대체로 조선 시대에 세워졌으며, 화산서원, 화암서원, 백산서원, 오강서원 등이 익산을 대표한다. 개화기를 기점으로 하는 근대 이후의 익산 교육은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익산시의 근대 이후의 학교 교육은 계명학교[1908년 설립]와 부용학교[1909년 설립] 등이 대표적이다. 익산에 독특한 형태로 나타난 근대 이후의 학교는 1909년 5월 익산시 춘포면 대장촌에 개교한 심상소학교이다. 심상소학교는 춘포면 일대에 거주하던 일본인 자녀들만 입학할 수 있었던 학교이다.

익산시의 현대 교육 체계는 1952년 5월 이리시 초대 교육위원을 선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1952년 11월 7일에 교육청 청사가 마련되면서 정부의 교육 정책에 따른 학교 교육이 전개되었다. 익산시의 교육비전은 “시민과 함께하는 행복한 익산교육”이다. 익산시는 교육의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 미래형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익산시의 학교 현황은 2019년 8월 기준으로 유치원 78개[사립유치원 26개, 공립유치원 58개], 초등학교 60개, 중학교 26개[사립중학교 10개, 공립중학교 16개], 고등학교 19개[사립고등학교 11개, 공립 고등학교 8개], 특수학교 2개[전북혜화학교, 전북맹아학교], 대학교 4개[일반대학 1개, 전문대학 2개, 대학원 1개]가 있다.

[복지]

익산시에 처음으로 등장한 사회복지 형태의 사업은 1934년 익산군 이리읍 욱정에서 부랑아동 1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보호사업이다. 이 보호사업은 1953년에 삼동회로 이관되고 이리보육원으로 개칭된다. 한국전쟁 이후에 발생한 수많은 고아를 보호하는 사업이 사회적으로 필요해지자 익산에서도 익산보화원(益山普化園)이 설치된다. 이 외에도 양로원, 장애인 복지시설 등도 함께 설립된다. 익산시의 복지정책은 대부분 국가차원의 복지정책 실행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민의 참여와 요구가 증가함에 따라 시가 주체적으로 실행하는 복지정책이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익산시의 복지에서는 여성복지, 익산시 여성 출산, 여성 가족 친화 도시 등이 가장 먼저 눈에 띠는 정책이다. 이는 익산시가 여성을 위한 복지 정책 기반을 잘 조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밖에 익산시에서는 사회복지시설, 다문화가족, 아동, 노인, 장애인 등을 위한 복지를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 『익산시사』(익산시사편찬위원회, 2001)
  • 익산시청(http://www.iksan.go.kr)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