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생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045
한자 衣生活
영어공식명칭 Costume Life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곽정숙

[정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입었던 의복과 예복에 관련한 생활상.

[개설]

과거에는 의생활이 문화적 환경만큼이나 지역의 자연적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주로 지역에서 나는 천연재료로 옷이나 천을 만들어야 하였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도 합성섬유가 대중화되기 전인 1960년대까지는 삼베와 모시, 무명, 목화솜 등을 직접 만들어 옷을 해 입었다. 삼베는 고조선 시대에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서민들이 여름철에 애용하던 천으로, 두레삼이라 하여 부녀자들이 두레를 이루어 삼베를 짜기도 하였다. 겨울철에는 따뜻하고 질긴 무명베를 애용하였고 목화솜을 누벼 입기도 하였다. 명주나 모시는 고급 천이어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이들이 즐겨 입었다. 동네에 누에를 치거나 목화를 기르는 집은 흔하였고, 농사짓기와 누에치기를 병행하는 집도 드물지 않았다. 특히 집마다 키우던 목화로는 솜틀집에 가서 솜을 튼 후 솜이불을 만들거나 두툼한 솜옷을 만들어 입었다.

또한, 과거에는 의복은 성별에 따라 확연히 구분되는 편이었다. 여성은 삼베와 무명옷, 노동하기 편리한 몸빼[일바지]를 주로 입었으며, 남성은 양복을 주로 입었고 여름철에는 모시옷을 즐겨 입었다. 여성이 한복을 입을 때 속바지에 주머니가 없어 불편하였기에, 천을 덧대어 주머니를 만들어 입곤 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머니가 있는 속바지도 판매되었다.

1970년대에는 새마을운동과 맞물려 의복 간소화가 이뤄졌다. 평소에는 서양식 복색을 입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고, 여성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면서 여성복도 치마저고리보다는 활동적인 의복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한복은 돌잔치, 결혼식, 환갑 등의 행사가 있을 때에나 입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의례복이 되었다. 그래서 한복을 과거처럼 직접 만들거나 맞추어 입기보다는 한복 가게에서 빌려 입거나 기성 한복을 사 입는 사례가 많아졌다. 또한 대량생산된 기성복을 오일장이나 옷가게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기성복이 보편화되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맞춤옷을 선호하여 의상실이 성행하였고, 학생의 교복을 맞춰 입었기에 학교 앞에도 의상실이 있어 교복을 맞추거나 옷을 수선하였다. 2019년 현재 익산예술의 거리가 있는 중앙동은 과거에 의상실 골목으로 유명하였으며 현재에도 몇 개의 의상실이 운영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로는 수출산업으로 섬유·의류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제품의 고급화가 이루어지고 캐주얼 브랜드가 급증하면서 의복의 다양화, 개성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한편, 익산의 의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섬유산업에 대해서도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농업 기반 도시였던 익산은 1970년~1980년대 이후에는 섬유 회사인 쌍방울과 태창을 중심으로 섬유산업의 메카로 탈바꿈하였다. 특히 쌍방울은 야간부로 이산여자상업고등학교를 운영하였는데, 이는 익산의 10대 여성들이 집안의 생계에 도움이 되고자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쌍방울에 입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던 이산여자상업고등학교는 1999년 2월에 폐교되었다.

[일상복]

1960년대까지는 일상복으로 계절에 따라 삼베와 모시, 명주와 무명옷을 입었다. 겨울에는 집 근처에 심은 목화를 수확하고 솜틀집에 가서 솜을 틀어 그 솜을 넣어 누비옷을 해 입었다. 목화솜 누비옷은 무겁고 활동에 얼마간 부자연스러움과 지장을 주지만 따뜻하였다. 여성은 치마저고리를 주로 입었으나 차차 활동이 편리한 옷인 기성복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특히 여자들은 일본에서 들어온 몸뻬를 즐겨 입었다. 현재도 농촌에서 일을 할 때 몸뻬는 즐겨 입는 옷 중의 하나이다. 원래 몸뻬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침략전쟁을 벌이던 일제가 자원과 경비의 절약이라는 명목으로 부녀자에게 착용을 강요한 바지이다. 당시 남성에게는 ‘국민복’이라는 국방색의 복장을 강요하였다.

1960년대 이후 합성섬유가 대중화되면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익산의 주민 대부분은 일상복으로 한복 대신에 남방이나 셔츠, 바지로 구성된 간편한 평상복을 입기 시작하였다.

[의례복]

의례복은 관혼상제(冠婚喪祭)나 백일, 돌 등에 입는 특별한 옷을 말한다. 의례복은 한 사람이 태어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일생과 함께한다고 할 수 있다. 태어나서 처음 입는 배내옷, 혼례를 올릴때 입는 혼례복, 상례 때 입는 상복, 생을 마감하면 입게 되는 수시복(收屍服)[수세복]과 수의 등이 있다.

배내옷은 딸이나 며느리가 임신을 하면 양가 어머니가 손수 바느질로 만들어서 준비하였지만 현대에는 주로 기성복으로 준비한다. 혼례복은 서양식 결혼식이 일반화되면서 과거의 한복를 연미복 또는 서양식 정장, 웨딩드레스가 대체하였다. 상복은 바느질이 고르지 않은 삼베옷을 입었으나 현대에는 남자는 검정 양복을 입고, 여자는 흰 한복이었다가 검정 한복으로 변화하였다. 수시복은 사망 직후부터 염을 하고 수의를 입기 전까지 입는 옷으로, 근대에는 고인이 입던 옷 중에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혔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주로 흰 한복을 준비해 두었다가 입힌다. 수시복을 준비하지 않는 경우, 사망 직후부터 염하기 직전까지 시신을 천으로 덮는다거나 속옷을 입히지 않은 채 흰 한복만 입힌다.

[현황]

한복이 주를 이루었던 의생활은 현재 산업화와 편리성, 기능성 추구로 말미암아 대량생산되는 브랜드 기성복이 주를 이루고 있다. 조선 후기의 형태가 정형화되었던 전통 한복은 개성, 참신성,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변화의 압력을 받으면서 1980년대 중반 이후 생활한복과 같은 혁신을 도모하였다. 생활한복은 전통적인 이미지와 고유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편리한 활동성과 아름다움도 지닌 의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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