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민주화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393
한자 -年代 民主化運動
영어공식명칭 1980s Democratic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주용

[정의]

군사독재 종식과 민주사회 건설을 위하여 항쟁하던 1980년대의 익산 지역의 시민운동.

[개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군사독재를 겪은 한국 사회는 민주정의 실현과 정착, 경제 민주화, 사회 정의의 실현이라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러한 목표를 안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하나의 정치적 세대로 형성되었다. 민주화운동 세대는 1980년 광주항쟁과 군부독재 정권 아래 대규모 민주화운동의 경험, 그리고 1987년 6월항쟁이라는 제한적 성과의 경험을 공유한 세대이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모든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익산 지역의 민주화운동]

익산은 원광대학교 중심의 학생운동과 산업단지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980년 5월 익산에서도 민주화 열기는 뜨거웠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첫 신호탄은 원광대학교 학생운동의 태동이었다. 1980년 4월 28일 원광대학교 학생들의 직접 투표로 구성한 총학생회가 그 중심이 되었다.

1980년 5월 7일 총학생회가 주최한 민주화촉진대회에서 원광대학교 학생들은 언론 자유와 학원 자주화 등 8개 항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교내 시위를 전개하였다. 5월 17일 전 대학에 휴교령이 내려졌고, 이 과정에서 전북 순창 출신으로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임균수가 1980년 5월 21일 광주에서 계엄군 총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원광대학교는 임균수 열사를 기념하여 캠퍼스에 추모비를 세워 임균수의 의로운 죽음을 기념하고 있다. 1980년 6월 25일에는 여산성당의 박창신 주임신부가 여산성당 내의 모든 공소를 돌며 참상을 알리는 강론을 펼치다가 사제관에서 쇠파이프를 든 괴한에게 테러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985년 9월 학원안정법 투쟁이 벌어졌다. 1985년 9월 24일 원광대학교 학생 500여 명은 총학생회 정기총회를 개최한 후 교내를 돌며 학원안정법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1987년 6월 10일 원광대학교에서 시작된 호헌 철폐, 독재 타도 투쟁은 인원이 200명에서 3,000여 명으로 증가하였고, 익산역 광장까지 진출하였다. 익산역 광장에서 합류한 시민들까지 1만여 명이 밤늦게까지 시위를 전개하였다. 원광대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는 결국 직선제 개헌을 받아내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걸음 성장시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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