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400
한자 許筠流配址
영어공식명칭 HeoGyun Youbaeji|Heo Gyun's House of Exile
이칭/별칭 허균 귀양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성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611년 - 허균 함열 지역으로 유배
소재지 함열현객사터 일원 -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지도보기
성격 유적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허균의 유배 생활 추정터.

[개설]

허균 유배지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인 허균(許筠)[1569~1618]이 과거 부정 사건에 연루되어 1611년(광해군 3)에 유배 생활을 한 곳이다. 허균이 전라북도 익산의 함열로 유배를 자원한 까닭은 함열 지역이 또 다른 생활의 근거지였던 부안과 인접한 곳이고, 당시 함열현감이었던 한회일(韓會一)과 밀접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허균의 거처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감과의 관계나 당시 지배층과의 교유라는 측면에서 관아 부근 객사나 관아 부근에서 생활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611년 1월 5일 함열에 도착한 허균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라는 작품을 집필하였다. ‘성소’는 허균의 호이며 ‘부부고’는 ‘장독대를 덮을 만한 정도의 보잘것없는 책’이라는 뜻이다. 『성소부부고』에는 「성수시화(惺叟詩話)」, 「도문대작(屠門大嚼)」이 실려 있는데 함열 지역과 관련된 글들이다. 「성수시화」는 시의 평가와 시작에 관계된 일화를 기재한 것이며 「도문대작」은 ‘고깃간 문 앞에서 입 다시는 소리를 크게 내며 고기를 씹어 먹는 시늉을 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좋아하는 것을 실천에 옮길 수 없지만 상상만으로 위안을 삼는다는 의미이다. 책 제목에서 허균의 기발한 문학적 발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성소부부고』에는 「함열현객사대청중건기(咸悅縣客舍大廳重建記)」가 실려 있어 당시 함열현 객사의 모습과 허균의 유배 상황을 추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함열 지역에서의 유배 생활은 허균이 전라도에 애착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변천]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함열현관아터는 정유재란 이후 재건되었으며 1896년 전라북도 각 군지·읍지에는 관사와 객사, 향교, 아문 등을 찾아볼 수 있다. 1905년 읍지에는 동헌에 아문이 보이지 않고 누상고가 있다. 대체적으로 건축 구조물은 동헌, 내아, 책실, 향청, 객사, 작청, 형리청, 사령방, 장청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구조물들은 6.25전쟁 때 일부 허물어진 상태로 존재하다가 흔적을 감춘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주변 주택에서 관아터에서 사용하던 부재가 활용된 것을 찾아볼 수 있었다.

[위치]

허균 유배지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함열현객사터 일원으로 현재 주차장, 함라어린이집, 가옥 등이 있다. 인근에는 함라노소, 김병순 등의 사대부 가옥이 보존되어 있다. 허균 유배지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현 함라어린이집[객사터]으로 추정할 뿐이다.

[현황]

함열현 관아와 객사 등 건축물은 현재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관아가 있었던 곳은 현재 주차장 자리 부근으로 추정되며 허균이 거처하였던 객사터 역시 관아 주변이다. 관아가 있었던 수동마을 주변에는 조해영 가옥, 익산 김병순 고택, 이배원 가옥 등 1920년대 기와집과 옛 담장 등이 보존되어 있어 경관이 우수하다. 2018년 익산시에서 「함열현 관아터 정비 및 활용 연구」 용역을 시행하였으나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수동마을허균이 머물며 『홍길동전』과 버금가는 『성소부부고』라는 문학 작품을 탄생시킨 곳으로 의미와 역사성이 깊다. 함열현 관아 및 객사의 재현 혹은 복원을 통하여 허균의 유배지임을 알릴 필요가 있다. 특히 함열 지역에서의 유배 생활은 허균이 전라도에 애착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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