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413
한자 益山彌勒寺址石塔
영어공식명칭 Stone Pagoda of Iksan Mireuksa Temple Site
이칭/별칭 미륵사지 서탑,미륵사지 서원 석탑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32-2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이다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639년연표보기 - 익산 미륵사지 석탑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62년 12월 20일연표보기 - 익산 미륵사지 석탑 국보 제11호 지정
복원 시기/일시 1999년 - 익산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보수 결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9년 -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사리장엄구 출토
복원 시기/일시 2019년 4월 30일 -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익산 미륵사지 석탑 국보 재지정
현 소재지 미륵사지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32-2 지도보기
성격
양식 목탑
재질 석재
크기(높이) 14.2m[높이]|12.5m[폭]
소유자 국유
관리자 익산시
문화재 지정 번호 국보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의 미륵사지 서원(西院)에 건립된 백제 시대 석탑.

[개설]

익산 미륵사지 석탑(益山彌勒寺址石塔)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위치한 미륵사지 서원에 건립된 석탑이다. 화재에 취약하였던 목탑을 번안(飜案)하여 돌로 만든 백제 석탑의 시원 양식이며, 현존하는 한국의 석탑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1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미륵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무왕과 왕비가 용화산 사자사로 행차할 때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한 것을 계기로 연못을 메우고 전·탑·회랑을 각각 3개씩 갖춘 미륵사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가람 구조는 발굴 조사에 의하여 모두 사실로 확인되었다. 탑은 중원에 목탑, 동원과 서원에 석탑을 건립하였고 그중 서원 석탑은 해체 과정에서 「금제사리봉영기」가 발견되어 639년이라는 건립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언제 없어지고 무너졌는지 알 수 없지만 『와유록(臥遊錄)』 1738년(영조 14) 기록에 의하면 석탑 하나가 100년 전에 벼락을 맞아 절반이 허물어졌다고 한다. 허물어진 석탑은 서원 석탑으로 추정되는데 1910년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촬영한 석탑 사진을 보면 상당 부분이 무너져 내려 간신히 6층까지 남아 있는 상태이고, 더 이상의 붕괴를 막기 위하여 장대석을 받치고 석축을 쌓은 모습이 보인다. 『와유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석축은 17세기 이전에 쌓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익산 미륵사지 석탑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 서원에 있다.

[형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6층까지 잔존 크기는 높이 14.2m이고, 폭 12.5m이다. 1층에는 십(十)자형 통로가 마련되어 있고 중앙에 심주석(心柱石)을 세웠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에는 총 1,627개의 부재가 사용되었고, 무게는 1,830톤에 이른다. 동원 석탑은 발굴 조사 때 출토된 노반석(露盤石)의 크기와 비례를 참고하여 1992년 높이 24.8m(상륜부 7.8m 포함)의 9층으로 복원하였다.

[현황]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1915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콘크리트로 보수하였는데 80여 년의 시간이 경과하면서 노후화로 인한 구조 불안정으로 1999년 해체 보수가 결정되었다. 2000년 가설 덧집을 설치하고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해체를 시작하여 2019년 4월 30일 준공하였다. 해체 과정에서 2009년 사리장엄구가 출토되었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2018년 보물 제1991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이다. 목탑을 번안하여 만든 석탑이기 때문에 1층 탑신의 민흘림기둥, 기둥 사이의 벽체·창방(昌防)·평방(平枋), 중앙의 심주석 등 목조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결구는 고대 목탑의 구조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석탑의 지하 기초 부분의 축조 방법과 동일한 기법이 중국과 신라의 고대 사찰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동북아시아 문화 교류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