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전유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588
한자 樗田遺稿
영어공식명칭 Jeojeonyug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간촌리 원촌마을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봉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927년연표보기 - 『저전유고』 편찬
간행 시기/일시 1927년연표보기 - 『저전유고』 간행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간행처 서원당 - 전라북도 익산군
성격 시문집
저자 이종림
편자 이겸태
간행자 이겸태
권책 8권 4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30.5×19.7㎝
어미 상흑어미
권수제 저전유고
판심제 저전유고

[정의]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근대 유학자 이종림의 문집.

[개설]

이종림(李鍾林)[1857~1925]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간촌리 원촌마을 출신이다. 문장이 뛰어난 인물로서, 개화기에는 선공관감역(繕工監監役), 한성부판사(漢城府判事), 법부참서관(法部參書官), 시종원부경(侍從院 副卿) 등을 역임하였다. 세상이 잘못 되어가는 것을 보고 1907년 1월 낙향하여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고종황제가 세상을 뜨자 상복을 입고 단소(壇所)를 만들고 슬퍼하였다. 저서로 『저전유고(樗田遺稿)』 8권 4책을 남겼다.

『저전유고』는 권1에서 권6까지 800여 수에 이르는 시를 수록하고 있다. 권7은 소(疏), 서(書), 서(序), 기(記), 명(銘), 송(頌), 논(論), 잡저(雜著)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명이 일곱 편, 잡저가 열네 편으로 가장 많다. 권8은 금강산, 정읍 내장사, 평양과 청주 화양동을 다녀온 유람록이다. 권미는 아들 이겸태(李謙泰)가 지은 가장(家狀)이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

이종림의 자는 성률(聖律), 호는 저전(樗田)이며,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이종림의 집안은 7대조 북청판관(北靑判官) 이순선(李循先)이 전라도 전주에서 이거(移居)한 이후 대대로 익산에 거주하였다. 이종림은 1857년 1월 23일 아버지 이석하(李奭夏)와 어머니 진주소씨(晉州蘇氏) 사이에서 익산시 삼기면 원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나서 여덟 살에 글을 지었다. 열세 살에 과거장에 나가서 글을 지으니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고, 스무 살에 상경하여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외유내강한 성격으로, 잘못된 일이 있으면 높은 고관이라도 도리로써 상대하였고, 말하는 데에 조리가 있었다, 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공덕에 힘입어 1890년 선공감감역에 제수되었으머, 1904년에는 한성재판소의 판사로 임명되었다. 뇌물을 받지 않고 법리대로 처결하여 권문세족이라도 잘못된 일은 바로잡았다. 1905년 3월 통정대부로 품계가 올랐으며, 10월 법부참서관에 전임되었다. 1906년 1월 가선대부로 품계가 오르고 6월에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

이후로 이종림은 나라가 날로 그릇되어 감을 탄식하고 1907년 1월 선대의 묘소 아래에 집을 짓고 은거하였다. 1918년 겨울 고종황제가 죽자 상경하여 상복을 입었으며, 집으로 돌아와 설단하고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에는 반드시 망곡(望哭)하였다. 선조 묘소를 돌보며 제사 비용을 대려고 경작하는 제전(祭田)을 마련하여 제사에 힘쓰다가 1925년 6월 5일 병으로 눈을 감았다.

[편찬/간행 경위]

1927년 후손들에 의하여 전라북도 익산군의 서원당(西原堂)에서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8권 4책의 목활자본이다. 책의 사주(四周)에 두 개의 검은 선이 돌려진 사주 쌍변(四周雙邊)이다. 반곽의 크기는 22.1×15.5㎝, 10행 20자이며, 주는 쌍행(雙行)이다. 어미는 상흑어미(上黑魚尾)이며, 책 크기는 30.5×19.7㎝이다.

[구성/내용]

『저전유고』는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부터 권6까지는 시이고, 권7과 8은 문장이다.

권1은 백마흔여섯 수, 권2는 여든다섯 수, 권3은 백열아홉 수, 권4는 백스물일곱 수, 권5는 백예순세 수, 권6은 백열 수가 수록되어 있다. 오언시보다는 칠언시가 압도적으로 많고, 율시와 장편이 많다.

권7은 소, 서, 기, 명, 송, 논, 잡저 등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는 시종원부경을 사직하는 상소이다. 서(書)는 경성의 도종회소(都宗會所)에 건의하는 편지, 이현구(李鉉九)가 보내 준 시를 평하는 편지, 이준섭(李埈燮)에게 함께 유람하자고 한 편지, 전라북도 향약의 도헌(都憲)과 도약장(都約長) 두 직임을 사양하는 편지 등 네 편이다. 서(序)는 「분매설증권혜산항서(盆梅說贈權蕙山沆序)」, 「익산화산서원절목서(益山華山書院節目序)」, 「익산화암서원절목서(益山華巖書院節目序)」, 「건릉제파재후자서(健陵祭罷後自敍)」 등 네 편이며, 기는 「함애정기(咸愛亭記)」 한 편이다. 명은 일곱 편이며 송은 한 편이다. 논(論)은 의자왕의 잘못으로 백제가 망한 것을 논한 글이다. 잡저는 모두 열네 편인데, 이 중에서 「자호저전변(自號樗田辨)」은 자신의 호를 ‘저전’으로 칭한 것에 대한 변론이며, 「만석군전(萬石君傳)」 역시 이종림 자신에 대한 전이다.

권8은 유람 일기(遊覽日記)이다. 1917년 5월 지은 서문과 「금강록(金剛錄)」, 「남유록(南遊錄)」, 「서유록(西遊錄)」, 「경신유람록(庚申遊覽錄)」 등 네 편이다. 「금강록」은 1917년 5월 2일부터 6월 1일까지 친구들과 이리를 출발하여 금강산을 다녀온 기록, 「남유록」은 9월 3일부터 10일까지 전라북도 정읍의 내장사를 다녀온 기록, 「서유록」은 1919년 9월 2일부터 26일까지 익산 원촌에서부터 평양을 거쳐 청주 화양동을 다녀온 기록, 「경신유람록」은 1920년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충청남도 논산군 은진에 있는 관촉사를 다녀온 기록이다.

부록은 저자의 아들 이겸태가 아버지의 행적을 기록한 가장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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