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이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621
한자 益山李氏
영어공식명칭 Iksan Lee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577년 - 이문진 출생
본관 익산 - 전라북도 익산시
성씨 시조 이문진(李文眞)

[정의]

이문진을 시조로 하고, 익산을 본관으로 하는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세거성씨.

[개설]

익산이씨(益山李氏)는 이문진(李文眞)[577~?]을 시조로 하고, 익산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

[연원]

익산이씨의 시조 이문진은 고구려 영양왕 때 대학박사, 문부전서, 오경박사를 역임하고 공신후가 되었다. 그 뒤 백제의 공주와 결혼하여 백제로부터 익주(益州)[현 익산시]를 식읍으로 하사받았다. 익산이씨는 이문진 이후 세보가 사라져 고려 태조 때 이의(李誼)를 중시조로 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익산군」 성씨 조에 따르면 익산 지역에는 “김(金)·한(韓)·송(宋)·이(李)·황(黃)·임(林)·구(仇)”씨가 거주하고 있었다 한다. 또한 인물 조에 고려 시대 인물인 이주(李湊)[1201~1278], 이행검(李行儉)[1225~1310], 이공수(李公遂)[1308~1366] 등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익산이씨는 고려 시대부터 금마면 일대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주는 고려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해 부성현위(富城縣尉)가 되었으며, 아들인 이행검(李行儉)도 충렬왕 대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행검의 아들인 이직(李稷)도 과거에 급제하였고, 이행검의 손자인 이공수도 과거에 급제하여 공민왕 때 익산부원군(益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익산이씨 가문의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로는 무과에 급제한 이득상(李得尙)·이란(李蘭)·이순겸(李順兼)·이신영(李新英)·이지득(李枝得)·이현근(李賢根)이 있다. 진사시 합격자로는 이몽일(李夢日)과 이저(李著), 생원시 합격자로는 이후배(李厚培) 등이 있다.

[현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익산이씨는 전국에 1,970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시도별로 살펴보면 서울특별시 601명, 부산광역시 24명, 대구광역시 17명, 인천광역시 203명, 광주광역시 35명, 대전광역시 29명, 울산광역시 8명, 경기도 697명, 강원도 41명, 충청북도 19명, 충청남도 31명, 전라북도 149명, 전라남도 16명, 경상북도 53명, 경상남도 36명, 제주특별자치도 8명이었다. 익산시에는 4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참고문헌]
  • 『익산시사』3(익산시사편찬위원회, 2001)
  • 국가통계포털(http://kosi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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