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769
한자 金漢奎
영어공식명칭 Kim Hankyu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상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0년 1월 25일연표보기 - 김한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0년 8월 14일 - 김한규 군산의 부호 고갑준에게서 독립운동 자금 9,600여 원 강탈
활동 시기/일시 1922년 3월 2일 - 김한규 자수
활동 시기/일시 1922년 4월 8일 - 김한규 경성지방법원에서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 혐의로 징역 3년형 언도
몰년 시기/일시 1961년 5월 12일연표보기 - 김한규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4년연표보기 - 김한규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출생지 신룡 - 전라북도 익산시 신룡동 지도보기
활동지 군산 - 전라북도 군산시
활동지 서울 - 서울특별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한규(金漢奎)[1900~1961]는 1900년 1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신룡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6월경 김한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으로 입국한 김진성(金振聲)을 중심으로 고정식, 이순명, 김교우 등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대해 논의하였다. 김한규 등은 1920년 8월 14일 군산에서 완구용 육혈포 두 자루와 회중전등 한 개를 준비한 뒤 8월 18일 밤 12시경 고산(高山)의 부호 고갑준에게서 독립운동 자금 9,600여 원을 빼앗은 후 서울로 돌아왔다. 이 사건으로 김한규를 제외한 동지들은 모두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김한규는 검거를 피하여 몸을 숨겼지만 고정식이 1920년 11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21년 2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1922년 3월 2일 자수하였다. 1922년 4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은 뒤 항소하였지만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61년 5월 1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4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한규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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