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774
한자 金時福
영어공식명칭 Kim Sibok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상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5년연표보기 - 김시복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0년 2월 24일 - 김시복 송병린에게서 군자금과 군수품 강탈
활동 시기/일시 1910년 4월 7일 - 김시복 일본인 사에키 분타로의 집을 습격하여 총기와 탄약 강탈
활동 시기/일시 1910년 12월 23일 - 김시복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형 언도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김시복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출생지 익산 - 전라북도 익산시
활동지 김제 - 전라북도 김제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개항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활동 사항]

김시복(金時福)[1885~?]은 1885년 전라북도 익산군 남일면 용자포에서 태어났다. 1908년에서 1909년까지 2년 동안 전국적으로 펼쳐진 의병 항쟁 중 호남 지역은 그 어떤 지역보다 전투가 치열하였다. 호남 의병을 토벌하기 전에는 한일 합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제는 1909년 9월부터 2개월 동안 무자비한 탄압과 살육을 저지르며 남한대토벌작전(南韓大討伐作戰)을 전개하였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에도 국권 회복을 위해 많은 의병들이 만주와 연해주로 이동하여 나라 밖에서 항일투쟁을 이어 나갔으며, 일부는 산간지대를 거점으로 항일투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김시복은 이 시기에 의병으로 활동하며 1910년 2월 24일 박영오(朴永五) 등 4명의 동료들과 함께 고산군 서면[현 완주군 비봉면] 내월곡리(內月谷里)에 거주하는 송병린(宋秉麟)의 집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4월 7일에는 김제군 공동면 난산리에 거주하는 일본인 사에키 분타로[佐伯文太郞]의 집을 습격하여 일본인 고용인을 폭행하고 총기와 탄약을 빼앗았다. 김시복은 이 일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1910년 12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시복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익산시사』3(익산시사편찬위원회, 2001)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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