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1252
한자 喪禮
영어공식명칭 Funeral Rites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미경

[정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사람이 죽어 장사 지낼 때 수반되는 모든 의례와 절차.

[개설]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상례는 사람이 죽어 장사를 지낼 때 진행되는 모든 의례를 의미한다. 상례 절차는 집집마다 자신들이 지키는 풍습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개 익산 지역에서는 혼불나가기부터 임종, 수시, 초혼, 사자상(使者床)차리기 등을 행한다. 그리고 상복과 수의, 관, 장지 등의 준비 절차도 있다. 시신은 염습을 하여 입관한다. 임관 후에는 혼백을 요여(腰輿)[시신을 묻고 나서 혼백과 신주를 모시는 작은 가마]에 가지고 나갔다가 매장 절차가 끝나면 가지고 들어오는 풍습도 있다. 성복을 하고 조문을 받으며 과거에는 상여놀이도 하였다. 출상하고 발인제도 지낸다.

[연원 및 변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익산 지역에서는 마을에 따라서는 공동 상여가 존재하여, 상을 당한 집에 가져다주었다. 상여가 장지로 가는 길에는 상여를 멈추고 길목에서 거리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시민이 장례식장을 이용하여 상을 치르기 때문에 상례도 급격히 간소해지는 추세이다. 고인과 유족의 종교에 따라 상례의 예법에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고 대부분의 상례는 비슷하게 치러지고 있다. 1970~1980년대 무렵만 해도 꽃상여를 지고 상례를 치르던 모습이 많이 보였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전통 상례의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익산시의 용안면 석동리용두리, 난포리, 법성리 등 네 개의 마을에서는 2017년에 열린 ‘용머리고을 억새축제’에서 이색 체험 프로그램으로서 전통 상례인 꽃상여놀이를 선보인 바 있다.

[절차]

익산 지역의 상례는 전라북도의 다른 지역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 익산 지역에서 행해지던 전통적인 상례 절차를 살펴보면, 먼저 사람이 생을 마칠 때가 가까워졌을 때 그 사람의 친지와 가족이 모여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는 ‘임종(臨終)’을 맞는다. 일반적으로 임종이 가까워지면 안방에 모시고 유언을 듣기도 하는데, 요즘은 병원에서 임종을 지키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예전에 집에서 임종을 지킬 때에는 망자가 숨을 거두었는지를 확인하려고 코에 솜 또는 종이를 대어 보는 절차를 거쳤다. 사망한 어른이 눈을 감지 않고 있으면 눈을 쓸어 감겨 주고 곡을 하기 시작한다.

망자가 숨을 거두었을 때 시신이 굳기 전에 몸을 반듯이 누이는 것을 ‘수시(收屍)’라고 부른다. 이는 주로 망자의 가족들이 하는데 요즘은 병원 장례식장에서 전문 장례사가 행한다. 주로 광목으로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묶고 두 손은 배에 얹는다. 또, 두 발의 엄지발가락도 엄지손가락을 묶는 방식으로 똑같이 한다. 수시를 끝내면 대나무로 엮어 만든 칠성판 위에 시신을 눕혀 볏짚으로 만든 베개를 베게 한다. 시신은 주로 방의 윗목에 두고 장례를 치른다. 이때 머리는 동쪽 방향으로 두고 다리는 서쪽 방향에 놓이게 하고 시신을 이불로 덮은 후 병풍을 쳐서 가린다. 그러고 나서 혼을 다시 부르는 ‘초혼(招魂)’을 한다.

초혼은 수시를 마친 후 가족 친지 중 한 사람이 망자가 평소에 잘 입던 저고리를 가지고 초상집 지붕으로 올라가서 “전라북도 익산시 ○○면 ○○리 ○○○[망자의 이름] 복, 복, 복!”이라고 크게 외친다. 이는 다시 돌아오라는 의미로, 망자의 혼을 불러들이는 일종의 주술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지붕 위에서 휘두른 저고리는 두세 시간 후에 가지고 내려와 망자 위에 덮어 준다. 한편, 과거에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사자들이 망자를 데리고 간다고 여겨 저승사자들을 대접하는 의미로 대문 앞에 사자상을 차린다. 사자상차리기는 초혼을 전후하여 행한다.

초상을 치를 상주(喪主)는 베옷이나 흰옷을 입는다. 대개는 머리를 풀고 곡을 하는 것이 상례이다. 상주는 일반적으로 망자의 맏아들이 하는데 아들이 어리거나 자식이 없을 경우는 망자의 배우자가 상주 노릇을 한다. 호상(護喪)은 상례의 절차를 잘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진행한다. 예전에는 수의(壽衣)와 관(棺), 장지(葬地) 등은 초상을 나기 전에 미리 준비해 둔 집이 많았다. 수의는 대개 부인이 남편의 것과 자신 것을 직접 만들어 보관하거나 기성품을 구매하여 집의 천장에 매달아 놓는다. 관은 대부분 소나무를 재료로 하여 만든다. 선산에 장지를 마련하는 경우 지관(地官)에게 좋은 자리를 지정해 줄 것을 부탁한다.

‘염습(殮襲)’은 습(襲)과 염(殮)을 의미한다. 습은 시신을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수의로 갈아입히는 전 과정을 일컫는다. 시신을 목욕시킬 때는 주로 향나무 삶은 물을 사용한다. 이때 시신의 얼굴, 손, 발 등을 베를 사용하여 깨끗하게 닦아 준다. 그리고 시신을 깨끗하게 목욕시킨 후에 비로소 시신에게 수의를 입힌다. 염은 시신의 몸을 줄로 묶는 것인데 대개 왼쪽 방향으로 꼬아 줄을 만든 것을 사용한다. 망자가 남자인 경우 삼과 짚을 사용하며 여자인 경우는 삼베로 만든 것을 사용한다. 시신을 다 묶고 나면 입관(入棺)을 한다. 입관 후 출상할 때 망자의 신위(神位)를 삼베로 접어 가지고 가는 것을 혼백을 가지고 나간다고 한다. 이때 혼백을 요여에 넣어 가지고 간다. 장지에서 모든 매장 절차가 끝나면 혼백을 다시 집으로 가지고 돌아온다.

‘성복(成服)’은 상주가 상복을 입는 것을 일컫는다. 상주가 상복을 입으면 이제 망자를 위한 조문을 받고 상식(上食)도 올려야 한다. 조문(弔問)은 상주를 위로하고 망자의 명복을 빌고자 친인척을 비롯한 친지들이 부고를 받고 초상집을 찾아오는 행위를 말한다.

조문도 마무리가 되면 시신을 상여에 실어 집 안에서 밖으로 모시고 나오는 절차를 행하는데, 이를 출상(出喪)이라고 부른다. 상여는 개인이 따로 만들기도 하였지만, 주로 마을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상여를 상엿집에 보관하고 있었다. 출상 전날에 상여를 초상집 마당에 가져다 놓고 상여놀이를 벌였다. 상여놀이는 빈 상여를 메고 풍악을 울리고 노래를 하면서 마을을 돌아다니는 놀이인데, 이는 상여를 메고 갈 상여꾼들이 미리 손발을 맞춰 보는 의미도 있었지만, 슬픔에 잠겨 있는 상주를 위로하려는 뜻도 있었다. 출상을 하는 날짜는 반드시 홀수로 정한다. 출상의 절차가 끝나면 곧바로 모든 참석자는 관을 상여에 싣고 상여 앞에서 발인제(發靷祭)를 지낸다. 발인제가 끝나면 드디어 상여가 대문 밖을 나서 장지로 향하게 된다.

[원불교식 상례]

익산시는 종교식 상례도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원불교중앙총부익산시 신용동에 자리 잡고 있어 원불교식 상례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원불교의 상례는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고 원불교 교당에서 사십구재(四十九齋)를 지내며, 총 7주에 걸쳐서 매주 동일한 시간에 독경을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원불교중앙총부의 향적당에 빈소를 마련하기도 한다.

원불교는 예법을 시행할 때 생활에 적합하고 검소하게 하는 것을 중요시하는데, 이런 점은 상례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복장을 예로 들자면, 일반적인 상례로는 망자에게 입히는 수의는 보통 삼베를 주 재질로 따로 준비해 두며 상례를 치를 때 직계가족들은 백색과 흑색으로 상복을 입는데, 원불교의 「가정의례준칙」에서는 수의는 고인의 평상복으로 하며, 상복도 따로 준비하지 않고 평상복으로 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반 상례와 다를 바 없이 수의와 상복을 준비하여 진행하기도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익산을 비롯한 호남 지역에서는 사람이 죽기 사나흘 전에 사람의 혼을 이루고 있다는 푸른빛인 혼불이 사람의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하는데, 이를 ‘혼불나가기’라 일컫는다. 집에서 혼불이 나가는 모습을 발견하면 며칠 후에는 그 집에서 사람이 죽는다고 여기며, 혼불이 나가는 모습을 발견한 이는 그 사실을 그 집에 알릴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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