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5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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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礪山壺山春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음식물/음식물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가람1길 64-8[원수리 57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은용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8년 3월 16일 - 여산 호산춘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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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여산 호산춘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재지정 |
지역 내 재료 생산지 | 이병기선생생가 -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가람1길 64-8[원수리 573] |
성격 | 가양주|전통주 |
재료 | 찹쌀|맵쌀|누룩|밀가루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에 전하여 오는 전통주.
[개설]
여산 호산춘은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에서 전해 내려온 가양주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밀주 단속 탓에 많은 종류의 우리 전통주가 맥이 끊어졌는데, 현재 여산 호산춘은 여산면에서 대를 이어 온 시조 시인인 가람 이병기(李秉岐)[1981~1968]의 가문을 통해 제조 방법이 계속 전승되었다. ‘호산춘’이라는 명칭은 뛰어난 술을 가리키는 춘(春)과 여산의 주산인 천호산(天壺山)이 합쳐져 지어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여산 호산춘은 이병기가 즐겨 마시던 술로도 알려져 있다. 이병기는 자신에게는 세 가지 복이 있어 스스로를 삼복지인(三福之人)이라고 불렀는데, ‘술 복’, ‘난초 복’, ‘제자 복’이 그 세 가지이다. 그중에서도 ‘술 복’을 첫 번째로 꼽았다고 한다.
[연원 및 변천]
여산 호산춘은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제조 방법 등에 관한 기록들이 남아 있으며 현재까지도 옛 제조 방식을 잃지 않고 전승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술이다. 특히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역사서인 『금릉승람(金陵勝覽)』에서는 “김천 과하주는 익산의 여산주(礪山酒)[여산 호산춘을 일컫는다], 문경의 호산춘(湖山春)과 더불어 전국에서 이름난 술이다.”라고 평가하고 있어 조선 시대에도 대표적인 명주로 이름을 떨쳤음을 잘 알 수 있다.
여산 호산춘은 이병기 가문의 전통 가양주이기도 하다. 이병기의 25대 조부인 이현려는 고려 시대였던 1156년부터 1203년까지 왕의 검식관인 지다방사(知茶房事)를 지냈는데, 그 당시부터 제조 방법이 개발되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병기 가문에서 여산 호산춘을 빚는 방법을 보유하고 있는 이는 이현호이다. 이병기의 조카인 이현호는 자신의 어머니인 이경희에게서 여산 호산춘의 제조 방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만드는 법]
여산 호산춘은 밑술에 덧술을 두 번 더하는 식으로 술을 세 번 빚는 삼양주(三釀酒)이다. 술을 빚으려면 먼저 밑술은 멥쌀을 씻어 갈고, 물을 끓인 뒤 멥쌀가루에 붓고 범벅을 만든다. 쌀 범벅에 섬누룩를 가루 내어 섞고 술밑을 빚어, 이를 메주덩어리처럼 뭉쳐 술독에 담근 후, 사흘간 발효시킨다. 덧술은 밑술을 채에 걸러서 찌꺼기를 제거하고 막걸리를 만든다. 이후 찹쌀을 씻어 하룻밤 불렸다가 시루에 안쳐 고두밥을 짓는다. 술밑을 안친 술독을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킨다. 술이 익으면 술독에 술 거르는 데에 쓰는 통인 ‘용수’나 술자루로 이용하여 술을 걸러서 마신다. 술 빚는 데에 3~4주가 걸린다.
[현황]
여산 호산춘은 2013년에 열린 ‘한국궁중술빚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심사위원들한테서 “맛과 향이 빼어나다.”라는 호평을 받았으며, 특히 “가양주임에도 불구하고 알코올 도수가 18%까지 올라갔다.”라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2018년 3월 16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