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7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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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羲文 |
영어음역 | Jo Huimun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연정 |
[정의]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평양(平壤). 평양조씨 시조 조춘(趙椿)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에 의하면 고려 때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남송(南宋)에 가서 금(金)나라를 정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송나라 상장군(上將軍)이 된 인물이다.
조춘은 상원(祥原)에 정착하여 4세손까지 내려오다가 5세손 조인규(趙仁規)의 딸이 충숙왕의 비가 되어 국구(國舅)가 되었고, 선충익대보조공신(宣忠翊戴輔祚功臣)에 책록되었으며 문하시중태사(門下侍中太師)로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충렬왕의 명에 따라 상원에서 평양으로 본관을 바꾸고 그를 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활동사항]
조희문(趙羲文)의 집은 몹시 가난하여 죽도 제대로 끓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조희문은 좋은 음식을 보면 반드시 얻어 소매 속에 넣어와 부모에게 드리기를 10년간이나 하였다. 어버이가 이질로 누워 있을 때 밤낮으로 약시중을 들었지만 모든 처방이 효험이 없었다.
의원이 설사 치료에는 비둘기 고기만 한 것이 없다고 말하자, 사방으로 비둘기를 구하러 다녔다. 그러나 구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니 비둘기 한 쌍이 집에 날아들어 이를 잡아 약을 해드려 효험을 보았다. 또 의원이 싱싱한 배를 먹으면 위를 펼 수 있다고 하자 곧바로 안성(安城) 장터로 달려갔다.
간신히 배 3개를 사가지고 장갑고개에 이르니 큰 범이 길 가운데 앉아 있었다. 그가 배를 내보이면서 부모님 약을 사오는 길인데 네가 나를 해치면 부모님을 구할 길이 없다고 하니, 호랑이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배를 드리고 때때로 변을 맛보아 간병하였다. 상을 당하자 예에 따라 장례를 지내고 3년 상을 마쳤다.
[상훈과 추모]
1881년(고종 18)에 감사가 조정에 보고하여 감찰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