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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1672
한자 常山館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한시
작가 이황(李滉)
창작연도/발표연도 조선 전기

[정의]

조선 전기 이황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던 상산관에서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개설]

「상산관(常山館)」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수의(繡衣)[어사또]로서 이곳을 지날 때, 진천의 옛 지명인 상산(常山)의 객사(客舍)에 들러 이 고장 백성의 삶과 목민관으로서 위정자의 자세에 대하여 경구하는 의미로 지은 뒤 게판(揭板)한 한시이다. 상산관(常山館)은 현재의 진천읍 읍내리 진천군청 자리에 있던 조선시대의 객사이다.

[내용]

변변치 못한 재주로 어찌 미칠 수 있으랴[菲才直道詎追前]

나약한 성격엔 예로부터 활줄을 찼다오[懦性從來合佩弦]

백성들의 병은 시우 뒤에 소생하고[民病欲蘇時雨後]

봄빛은 나그네 근심 속에 모두 사라졌구나[春光都盡客愁邊]

헌자는 푸른 장막 속에 드리웠고[堂軒翠樹圍靑幄]

눈에 어리는 아름다운 꽃은 연기 속에 잠기었네[照眼紅花幕紫煙]

어지러운 일도 모두 어진 수령님 주재에 달렸나니[慌政儘由賢守宰]

선정으로 고만삼년을 버리지 말기를[莫令幷棄艾三年]

[특징]

선정을 베풀면 백성은 자연스럽게 위정자를 칭송하지만,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게 되면 원성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목민관의 초심과 위정자로서의 자세를 경구하는 한시로서, 나라의 공록을 먹는 목민관이 취해야 할 자세가 잘 나타나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6.12 [내용] 보완 누락된 시구 추가: 懦性從來合佩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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