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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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工藝-傳統-脈-德修里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동만 |
1977년 10월 21일 - 제6회 탐라문화제 최우수상(청탁불무) | |
1978년 10월 5일 - 제7회 탐라문화제 최우수상(디딤불무) | |
1979년 10월 18일 - 제8회 탐라문화제 최우수상(불무노래), 제20회 전국민속경연대회 문공부장관상 (불무노래) | |
1979년 11월 21일 - 제8회 탐라문화제 최우수상(불무노래), 제20회 전국민속경연대회 문공부장관상 (불무노래) | |
1980년 10월 29일 - 제9회 탐라문화제 최우수상(방앗돌굴리는 노래), 제21회 전국민속경연대회 대통령상 (방앗돌굴리는 노래) | |
1980년 10월 31일 - 제9회 탐라문화제 최우수상(방앗돌굴리는 노래), 제21회 전국민속경연대회 대통령상 (방앗돌굴리는 노래) | |
1981년 10월 24일 - 제22회 전국민속경연대회 문공부 장관상 (집줄 놓는 노래)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6년 4월 10일 -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 7호 ‘불미공예“ 지정,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 9호 ‘방앗돌굴린믄 노래“ 지정 |
1991년 - 문화마을 선정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1년 - 제1회 덕수리 전통민속축제 개최 |
문화마을 안덕면 덕수리 - 안덕면 덕수리 | |
덕수리 전통민속 공연장 - 안덕면 덕수리 조각공원 옆 | |
덕수리 조각공원 - 안덕면 덕수리 |
[개설]
제주특별자치도의 대표적 주물공예인 ‘불미공예’의 무형 문화를 보존하고, 각종 민속 재현 행사를 통해 전통과 문화를 이어가는 문화마을 덕수리는 제주도의 서남쪽 산방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 안덕면에 위치하는 마을이다. 덕수리는 1979년 불미공예로 처음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1980년에는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방앗돌 굴리는 노래」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며, 1981년 「집줄 놓는 노래」로 또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고, 1994년에 문화마을로 지정되었다. 현재 덕수리는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7호인 ‘불미공예’와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9호인 ‘방앗돌 굴리는 노래’를 보유하고 있는, 전통과 민속이 잘 보존되어 있는 마을로 이름이 높다.
예로부터 주물공예의 고장으로 알려진 덕수리에서는 불미공예를 통해 제주도 내에서 필요한 무쇠솥과 농기구인 보습의 대부분을 생산해 왔다. 불미공예의 형태는 규모와 방법에 따라 ‘손불미’와 ‘디딤불미’ 두 가지로 나눈다. 손불미[똑닥불미]는 손의 힘으로 바람을 일으켜 쇠를 녹이거나 달구어 칼이나 호미를 만드는 작은 규모의 공예다. 반면 디딤불미[토불미]는 땅바닥에 장방형으로 골을 파서, 판자를 걸쳐 놓아 한쪽에 세 사람씩 판자의 끝을 널뛰기 하듯 디뎌가며 바람을 일으켜, 쇳물을 녹여 주물에 부어 솥이나 보습들을 만드는 큰 규모의 주물 공예이다. 보습·볏·솥 등을 대량으로 만드는 작업 공간을 불미마당이라 부르는데, 덕수리에는 이러한 불미마당이 열 군데 넘게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과학의 발달로 이용 가치를 잃어 민속 재현 행사로만 남아 있다.
제주에서 민속문화 유산이 가장 잘 보전되고 있는 덕수리는 “보석 같은 제주 민속문화 유산”을 간직하고, 계승하고 있는 문화마을이라 할 수 있다.
[수백년 동안 이어온 장인의 얼, 불미공예 재현]
불미공예 재현 행사는 연중 한 번 이루어진다. 덕수리 조각공원 옆 공연장에는 불무공예를 준비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불을 지필 나무 준비에서부터 둑이라 불리는 용광로를 예열하는 작업까지 사전에 완료되어야 한다.
예부터 덕수리에서 유독 풀무가 성행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덕수리에 분포하고 있는 찰흙에 그 비결이 숨겨져 있다고 전해진다. 덕수리 찰흙은 불순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입자가 곱고 미세하다. 또한 강한 불 속에서도 변형이 없기 때문에 주물용 틀을 만들기에는 가장 적합한 흙이라는 것이다.
제주도 지정문화제 제7호로 지정되어 있는 ‘불무공예’의 가장 큰 기술은 틀을 만드는 일이다. 흙을 짓이겨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줄을 감아 흙을 덧붙인 후 줄을 빼냄으로써 쇳물의 공간을 만든다. 솥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틀을 솥바슴이라고 한다.
솥바슴을 굽는 가마 역시 독특하게 만들어진다. 노천에 돌을 쌓아 솥을 올려놓고, 한번 사용했던 깨진 솥바슴을 이용하여 덮는다. 중간중간의 불구멍은 솥바슴의 가루를 이용하여 막는다. 솥바슴은 솥의 크기에 따라서 네 시간에서 여덟 시간 동안 구워내야 한다.
재현 행사의 마지막 과정으로 불무공예가 시작되는데, 미리 준비된 솥바슴은 온기가 보존된 채로 둑 앞에 진열된다. 불무작업은 불무대장을 중심으로 하여 쇠를 올리는 둑대장, 쇳물을 운반하는 오시대장, 물건을 관리하고 정리하는 질목대장 등 그 질서가 정연하다. 그만큼 역할과 의무가 중요하며 쇳물을 다루는 위험한 일인 만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일정 시간이 되면 드디어 쇳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쇳물은 필요한 만큼 받아 내고 진흙으로 구멍을 틀어막는다. 2000도 이상 되는 쇳물이 열기가 올라오지 못하도록하기 위해 쇳물 위에는 단열 효과가 큰 짚의 재로 덮는다.
쇳물이 식기 전에 솥바슴이라는 틀에 부어 넣는 것 또한 요령이 필요하다. 여차하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솥바슴 속으로 들어간 쇳물은 20분이면 굳어지는데, 이러한 과정이 끝나고 솥바슴을 부수면 그 자체로 솥이 완성되는 것이다.
덕수리 무쇠솥은 한때 도내 최고의 솥으로 일컬어져 왔다. 오늘날은 그 이용 가치를 잃어 민속 재현의 한 형태로만 남아 있지만, 덕수리 무쇠솥에는 높은 고열로 무쇠고철을 녹이며 뿜어 나오는 열기를 온몸으로 견뎌 내는 장인들의 정신이 스며 있다.
[협동 단결의 지혜, 덕수리 방앗돌 굴리는 노래]
덕수리의 한 방앗돌에는 약 100년 전의 일화가 전해진다. 이 마을 석공이 인근 돌산에서 거대한 방앗돌을 몇 달에 걸쳐 만들고 나서 마을 청년 수십 명을 동원하여 마을로 굴려 오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더란다. 난감해하던 석공은 마을 주민 전체가 끌 수 있는 긴 줄을 메어 마을 주민 전체가 협심 단결하여 천근 같은 방앗돌을 끌어올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그 한 토막의 일화가 주민들에 의해 재현되어 「방앗돌 굴리는 노래」라는 제주의 대표적 민속 유산으로 태어났다. 「방앗돌 굴리는 노래」란 연자매의 웃돌과 알돌을 큰 바윗돌이 있는 들이나 산에서 만든 다음, 이를 마을 사람들이 마을로 굴리어 오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방앗돌 굴리는 노래」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거의 사라진 운반 노동요의 일종인데 '솔기 소리'라고도 하며 흙이나 나무를 집단적으로 나를 때도 이 노래를 부른다.
방앗돌을 끄는 작업은 엄청난 힘이 필요하고, 또한 집단적으로 해야 했기 때문에 규칙적인 노동 동작이 요구된다. 따라서 한 사람이 선소리를 하면서 일꾼들의 힘을 돋우면 많은 남자들이 줄을 매어 일시에 당기는 식으로 연자 방앗돌을 굴려 나간다.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방앗돌을 옮기는 힘겨움을 협동으로 이겨냈다는 성취감과 희열은 방앗돌을 완성시켰다는 기쁨을 훨씬 뛰어넘고도 남았을 것이다.
힘겨운 노동을 협동과 공동체적 삶의 산물로 승화시켰던 마을 사람들의 지혜와 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자연과의 투쟁의 산물, 집줄 놓는 노래]
「집줄 놓는 노래」는 '각단'이란 짧은 띠로 지붕을 한 줄의 한 갈래씩을 꼴 때 부르기 시작하여, 이 두 갈래를 하나로 어울리어 줄을 만드는 일을 되풀이하면서 구성지게 부르는 노래다.
제주도의 초가지붕은 모진 바람 때문에 해마다 또는 한 해 걸러 이어야 한다. 안채와 바깥채를 이어야 하므로 줄을 마련하거나 지붕을 일 때에는 많은 이웃들이 품앗이해 가면서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줄 놓는 일과 지붕을 이는 일은 그 기능을 갖춘 사람들만이 일을 치를 수 있다. 집을 새로이 짓고 지붕을 일 때는 온 마을 사람들이 총 동원되어 서로 돕는데, 이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미풍양속이다.
덕수리는 마을 앞에 우뚝 솟은 산방산에 모진 바람이 부딪쳐 마을 안에 불어닥치는 일이 흔하므로 제주도에서도 유난히 바람이 세찬 곳이다. 특히 태풍이 휘감아 돌아드는 ‘산방내기’라는 바람은 더욱더 매섭다. 따라서 다른 마을에서보다도 더욱 굵은 집줄이 필요하였고, 그 전통 역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전통 민속문화 유산의 보고, 덕수리]
덕수마을은 400년의 긴 역사 속에서 자기들만의 독특한 농경문화를 이루고 발전시켜 왔다. 그 속에서 지켜온 민속문화 유산들 역시 톡특하고 가치가 있다.
마을 한 모퉁이에 남아 있는 독특한 모양의 방사탑은 마을 사람들의 문화적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민속유산이다. 돌로 만든 방사탑 위에 성기모양의 독특한 조형물을 올려놓았다. 척박한 자연 환경 속에서 혹시나 모를 자연 재앙에 대비하기 위해 ‘무병장수’를 기원했던 신앙세계가 방사탑에 투영된 것이다.
덕수리의 독특한 문화는 음력 정월 첫 정일날 치러지는 마을제에도 잘 남아 있다. 마을에서는 조선 시대에서부터 내려온 제사 유풍을 그대로 지키기 위해 음식과 채소, 그릇에 이르기까지 전통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제사 절차 역시 최근 간소화하는 여러 마을제에 반해 원형을 지키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