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5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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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임승희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진(鎭)의 외곽을 둘러서 축조한 성곽.
[개설]
진(鎭)은 삼국 시대 말부터 조선 시대까지 설치되었는데, 조선 시대에 들어오면서 순수한 의미의 군사적 거점 지역의 성격을 띠게 되면서 북방 변경 지역뿐만 아니라 남방의 해안 지역에도 진이 많이 설치되었고, 이 진을 둘러서 성곽이 축조되게 되었다.
제주도에도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이 설치되고, 읍성이 축조·개축됨에 따라 9개의 진과 봉수도 구축되었다. 제주도에 있는 9진성은 화북진성·조천진성·별방진성·애월진성·명월진성·수산진성·서귀진성·모슬진성·차귀진성이다.
[설치 경위]
1439년(세종 21)에 제주도 안무사 한승순(韓承舜)의 건의로 방어 시설이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가면서 성곽이 축조되었졌다. 이때 수산진, 차귀진의 성이 축조되었다.
1510년(중종 5)에 별방진성과 명월진성, 서귀진에 진성 축조가 시작되었고, 1676~1678년에 모슬진과 화북진에도 진성이 축조되었다. 그 외 조천진성과 애월진성은 고려 시대에 축성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변천]
진성 가운데 일부는 군사적인 요인 등으로 위치를 이전하게 되는데, 별방진성의 경우, 당초 김녕 방해소에 있었으나 1510년(중종 5)에 장림 제주 목사가 우도에 왜선이 자주 정박하자 이를 경계하기 위하여 김녕 방해소를 현 위치로 옮겨 진을 설치하고 성곽을 축조하였다.
수산진성의 경우는 1439년 제주도 안무사 한승순의 건의로 처음 축조되어, 1597년 이경록 제주 목사가 방호소를 성산으로 옮기면서 수산진을 폐지하였으나 2년 후인 1599년에 성윤문 목사가 다시 수산진으로 환원하였다.
모슬진성은 1510년 장림 제주 목사가 가래 방호소에서 동해 방호소로 이전하여 진성을 축조하였다. 그 후 1678년에 윤창형 제주 목사가 동해 방호소를 모슬진으로 옮겨 진성을 축조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