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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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房窟寺磨崖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백종진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767년 가을 - 산방굴사 마애명 임관주가 5언 절구 새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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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건립 시기/일시 | 1807년 - 산방굴사 마애명 한정운이 5언 절구 새김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807년 5월 - 산방굴사 마애명 원상요가 5언 절구 새김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822년 3월 - 산방굴사 마애명 구령석이 5언 절구 새김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903년 - 산방굴사 마애명 홍종우, 남만리가 새김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1년 12월 24일 - ①구령석(具齡錫)의 시 전구의 첫 글자 霱 판독. ②박정행(朴正行)의 아들 지순의 持 판독. ③남만리(南萬里)의 방문일시 판독. |
현 소재지 | 산방굴사 암벽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
성격 | 금석문 |
양식 | 해서체 |
관련 인물 | 혜일|임관주|원상요|한정운|구령석|박정행|김몽규|이유겸|이양정|이경린|여철영|조우석|신의항|안윤경|안의석|홍종우|남만리|장현수|오치각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산방굴사 암벽에 새겨진 글자.
[개설]
산방굴사(山房窟寺) 마애명은 영주 10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산방굴사의 암벽에 새겨진 마애명이다. 산방굴사는 고려 말의 고승인 혜일(慧日)이 산방법사라 하여 이곳에서 수도했다 전하는 동굴이며, 산방덕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산방굴사에서 바라보는 형제섬과 가파도, 마라도의 원경과 근경의 용머리 해안의 빼어난 경관으로 해서 조선 시대 목사나 시객(詩客)들이 이곳에 와서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
[위치]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산방굴사 암벽에 새겨져 있다.
[형태]
1. 시각(詩刻)
① 임관주(任觀周)의 시
해서체로 새겨진 5언 절구이다. 산방굴사에 새겨진 시각 중 가장 오래된 시이다.
임관주(任觀周)
석작신선굴(石作神仙窟) 돌로 된 신선의 굴에
방산루적공(方山漏滴空) 산방산 물방울소리 쓸쓸하고
남천창해활(南天蒼海濶) 남녘바다 광활한 중에
오초일망중(吳楚一望中) 오나라 초나라가 아득하구나
정해추(丁亥秋) 1767년 가을
임관주의 시 바로 아래에는 오덕원년사십을미생(吳德元年四十乙未生)… 각이 있다.
② 원상요(元相堯) 시
해서체로 새겨진 5언 절구이다. 2번째 구의 절반은 마모되어 식별할 수 없다. 『증보탐라지(增補耽羅誌)』[담수계(淡水契) 편, 1953]를 참고하여 첨가하였다.
사해환천리(四海環千里) 사방 천 리 두른 바다에
삼산정반공(三山鼎半空) 삼신산, 반공에 솥을 얹힌 듯
내지선자소(乃知仙子所) 알겠네, 신선이 사는 곳에다
천작일호중(天作一壺中) 하늘이 만든 별천지임을
현감원상요(縣監元相堯) 현감 원상요
정묘오월일(丁卯五月日) 1807년 5월 일
③ 한정운(韓鼎運) 시
해서체로 새겨진 5언 절구이다. 2번째 구의 등(藤)은 마모되어 식별할 수 없다. 『증보탐라지增補耽羅誌』[담수계(淡水契) 편, 1953]를 참고하여 추가하였다.
차벽상운(次壁上韻) 벽에 있는 시의 운자를 따서
쇠초산문적(衰草山門寂) 풀이 시든 절문은 고요하고
창등석실공(蒼藤石室空) 넝쿨 푸른 돌방은 비었는데
사문생학향(似聞笙鶴響) 신선의 학 울음소리
래자해운중(來自海雲中) 바다구름 속에서 들려 올 듯
정묘목사한정운(丁卯牧使韓鼎運) 1807년 목사 한정운
④ 구령석(具齡錫)의 시
해서체로 새겨진 5언 절구이다.
석세용두압(石勢龍頭壓) 돌산의 기운은 용머리를 누르고
선거조몽공(禪居鳥夢空) 스님의 거처엔 새도 잠들지 않는데
휼운생석저(霱雲生舃底) 상서로운 구름은 발아래서 생겨나고
영액적방중(靈液滴房中) 영험한 물방울은 굴방 안에 떨어지네
임오삼월일구령석차(壬午三月日具齡錫次) 1822년 3월 일 구령석이 차운하여 짓다
⑤ 박정행(朴正行)의 시
해서체로 새겨진 5언 절구이다.
연화홍진원(烟火紅塵遠) 밥짓는 연기 아득한
풍광석실공(風光石室空) 텅 빈 석실의 풍광
초연등우화(超然登羽化) 초연히 신선이 되니
망각재수중(忘却在愁中) 마음속 근심을 잊네
김릉객박정행차음(金陵客朴正行次吟) 금릉객 박정행이 운을 따라 읊다
자언순지순(子彦淳持淳) 아들 언순 지순
2. 명각(名刻)
① 영조 때
목사(牧使) 김몽규(金夢煃)
② 정조 때
이유겸(李儒謙)
장식(張(氵+寔)
목사(牧使) 이양정(李養鼎)
좌막(佐幕) 이경린(李景麟)
③ 순조 때
여철영(呂喆永)
④ 헌종 때
( )안의 글자는 마모되어 육안으로 판독하기 어렵다. 조우석 목사 당시 정의현감이 안의석이었으므로 '안(安)'으로 추정된다.
목사(牧使) 조우석(趙禹錫)
판관(判官) 신의항(申義恒)
대정(大靜) 안윤경(安允璟)
정의(旌義) □의석(ㅁ義錫)
⑤ 고종 때
광무계묘구월삼십일(光武癸卯九月三十日) 1903년 9월 30일
목사(牧使) 홍종우(洪鍾宇)
⑥ 고종 때
남만리(南萬里)
광무칠년계묘단풍만절(光武七年癸卯丹楓晩節) 1903년 단풍 든 가을에
⑦ 연대 미상
병료(兵僚) 장현수(張鉉琇)
예막(禮幕) 오치각(吳致慤)
[현황]
산방굴사 마애명은 풍화에 의한 마모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때문에 완벽한 판독이 이제까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곳에 등재되는 내용은 이전의 산방굴사 마애명 자료와 현장조사, 아울러 문헌자료를 통해 금번에 새롭게 기재되는 내용들이 여럿 있다. 더 이상 풍화작용에 의한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보존대책이 강구되어져야 하겠다.
[의의와 평가]
산방굴사 마애명은 한라산의 백록담과 함께 마애명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또한 제주 삼읍의 목사와 현감들의 시각과 명각 뿐만 아니라 유배객과 육지에서 온 유람객 등의 시각과 명각이 남아있어 제주목사의 순력 및 여정 등 옛 사람들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1차 자료로서의 사료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