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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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四三忠義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윤식 |
건립 시기/일시 | 1980년 6월 7일 - 4·3 충의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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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4·3 충의비 - 서귀포시 강정동 4070-2번지 |
성격 | 비석 |
재질 | 대리석, 오석 |
크기(높이) | 130㎝ |
너비 | 75㎝ |
두께 | 19㎝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동에 세워진 제주 4·3 사건 희생자 추모 비석.
[개설]
현재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천동에 편입된 ‘용흥마을’은 4·3사건 당시 중문면 강정2구라 칭했었고, 강정2구는 염돈·내팟·월산·궁산 등 몇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었다. 각각 50호 가량의 마을들이 합쳐져 모두 200호 남짓했던 강정2구는 4·3사건 당시 무장대의 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1948년 12월 1일 무장대가 염돈마을을 습격해 노인과 부녀자, 어린아이까지 무차별 학살했다. 12월 5일에는 월산마을에 무장대가 습격해와 1명이 희생되고 1명이 납치되었다. 또 12월 11일 내팟마을에도 무장대가 습격해와 무차별 희생이 발생하였다. 이 때는 내팟마을로 피난 온 염돈마을이나 월산마을 주민들도 희생되었다.
[건립 경위]
제주4·3사건 당시 무장대의 습격으로 희생된 염돈·월산·냇팟 마을 주민들을 기리기 위해 용흥마을 주민 이름으로 1980년 6월 7일 서귀포시 강정동 4070-2번지 용흥리 마을회관 앞마당에 세워졌다.
[형태]
제주 현무암으로 바닥돌을 2단으로 쌓고, 대리석으로 제작된 대석위에 오석으로 제작한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대리석으로 제작한 개석을 올렸다
[금석문]
전면에 ‘4·3 충의비(四·三 忠義碑)’ 우측면에 ‘1980년 6월 7일 (一九八十年 六月 七日) 용흥리 뜻있는 분들이 세웁니다’ 라 새기고 후면에 충의시(忠義詩)와 무장대의 습격으로 희생된 31명의 명단을 적었다
[현황]
비석은 마을회관 앞마당에 있으며, 한국전쟁 참전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충혼비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제주4·3사건 당시 토벌대의 과잉진압작전에 의한 주민희생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무장대의 습격으로 커다란 피해를 입은 마을도 있음을 상징하는 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