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7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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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信川康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만익 |
입향 시기/일시 | 1398년 - 신천강씨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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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신천 - 황해도 신천 |
입향지 | 신천강씨 입향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조천읍 함덕리 |
세거|집성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 |
성씨 시조 | 강호경(康虎景) |
입향 시조 | 강영(康永) |
[정의]
강호경(康虎景)을 시조로 하고 강영(康永)을 입도조(入島祖)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세거하는 성씨.
[개설]
신천강씨의 시조는 고려 태조 대 강호경이다. 그는 아들 충을 낳고, 충은 아들 보순과 보육을 낳았다. 강보육(康寶育)은 고려 태조 왕건의 외증조로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뒤 그 조부와 함께 원덕대왕으로 추존된 인물이다. 중시조[1세]인 충렬공(忠烈公) 강지연(康之淵)은 고려 명종 때의 인물로 벼슬이 은자광록대부문하시중(銀紫光祿大夫門下侍中)에 이르렀다. 강지연은 몽골 침입 때 고려 고종을 따라간 호종공신(扈從功臣)이며 신성부원군(信城府院君)[신성은 신천의 옛 이름]에 봉해짐으로써 이때부터 신천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연원]
오늘날 강씨(康氏)는 강지연의 후손이다. 상산백(象山伯) 강서(康庶)는 그의 6세손이 되며, 강서는 윤귀·윤성[상산부원군]·윤충·윤서·윤휘·윤부 등 6형제 아들을 두었다. 안릉군(安陵君) 강득룡(康得龍)은 8세손으로 둘째 윤성의 아들이 되며 조선 태조의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는 강득룡의 친누이동생이다. 강서의 제5자인 윤휘는 영·석·우·도 등 4형제를 두니 장자 강영[중시조 강지연의 8세손]이 곧 제주에 사는 신천 강씨의 입도조가 된다.
[입향 경위]
일찍이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에 봉직하다가 벼슬이 전라감사에 이르렀던 강영은 1398년(태조 7)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신덕왕후의 외척으로서 멸문지화를 입게 된다. 신덕왕후 강씨 소생 방번과 방석이 참살당하는 비극이 있어 강씨 집안이 무사할 리는 만무했다. 강영도 삭탈관직되어 유배의 몸으로 제주에 들어오게 된 것이 입도 배경이다. 일설에는 강영이 위해를 모면하기 위해 제주도로 피신했다는 말도 있다.
강영이 처음 입도한 곳은 조천읍 함덕리이다. 향인들에게 충효의 도리와 예의범절을 가르쳐 '제주사현(濟州四賢)'으로 일컫는다. 큰 아들 귀존(貴尊)을 육지에 남겨 두고 제주에 정착한 그는 고씨를 배필로 맞아 정(禎)·복(福)·만(萬) 세 아들을 낳는다. 강귀존의 후예는 호서파라고 하여 충청도에 많이 살고 있다. 강씨의 후예를 제주에서는 감사공파라 하나 제주파라고 부른다. 강영의 둘째 강정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장자 풍실(豊實)의 후예를 제주 일제(逸齊)공계라 하고, 아우 회생(回生)의 후예를 제주 죽월(竹月)공계라 일컫고 있다. 셋째 강복의 후예는 제주 농헌(農軒)공계라 한다. 막내 강복의 후예는 제주 연당(蓮堂)공계라 일컫는다.
[현황]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는 성산읍 온평리와 표선면 세화리, 하효동·보목동·법환동을 중심으로 신천강씨가 다수 분포하고 있다. 특히 서귀포시 법환동은 신천 강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제주도에는 본래 신천강씨와 곡산 강씨가 있었는데 모두 신천강씨로 통일되었다.
2000년 11월 현재 신천강씨는 제주도 전체에 2,697가구에 8615명, 곡산 강씨는 2,073가구에 6,574명이 거주하고 있다. 서귀포시 지역에는 신천강씨가 1,334가구에 4,014명, 곡산 강씨가 1,306가구에 3,920명이 분포하고 있다. 현재 제주 입도조 강영(康永)의 묘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있으며, 조천서원에 제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