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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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修淨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금순 |
활동지 | 수정 활동지 - 서귀포시 하원동 산 1-1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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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승려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존자암 승려 |
[정의]
조선시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있던 존자암에서 활동한 승려.
[개설]
존자암은 1500년경까지 국가경비로 제주목사와 대정현감, 정의현감이 번갈아 가며 국가의 안녕을 비는 국성재(國聖齋)를 지내던 절로 조선 후기까지 활동하였던 사찰이나 그 후 폐사되었다. 서귀포시 하원동 산 1-1번지인 한라산 영실 서북편 볼래오름 남쪽 능선에 옛터를 발굴 하여 1998년부터 복원불사를 벌이고 있다.
[활동 사항]
수정(修淨)은 1609년(광해군 1) 존자암에서 활동한 승려이다. 수정은 1609년 4월 8일 한라산 등반길에 존자암에 머무르게 된 제주통판 김치 일행을 맞이하였다. 이튿날 수정은 김치 일행을 영실, 오백나한을 지나 한라산 백록담까지 안내하였다. 김치는 『유한라산기(遊漢拏山記)』에 수정과의 한라산 등반 기록을 남겨놓고 있다. 김치는 수정과의 대화를 기록해 놓고 있는데, “스님 수정이 나에게 알리기를, ‘골짜기 속에는 백록(白鹿)이 영주초(瀛洲草)를 뜯어먹어 왕왕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본답니다. 실로 여기가 신선이 산다는 곳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수정이 나서면서 ‘예로부터 이제까지 이 산을 유람하는 자 중에서 정상에 오른 자 그 수를 알 수 없지만 늘 구름과 비바람으로 컴컴하여 지척(咫尺)을 가리지 못하니 모두 어쩔 줄 모르고 돌아 나섰습니다. 일찍이 승경(勝境)을 샅샅이 탐색한 이가 없는데 이제 명석한 당신께서 왔기 때문에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날씨가 쾌청하여 하늘과 땅의 신비함이 드러났습니다. 참으로 선골지인(仙骨之人)이 아니면 어찌 이런 데 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놀이에 능히 갖출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고, 이에 좌중이 활짝 웃었다”고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