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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855
한자 徐京保
이칭/별칭 일붕(一鵬),회암(悔巖)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이규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4년 10월 10일연표보기 - 서경보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932년 - 서경보 산방굴사에서 출가
수학 시기/일시 1933년 - 서경보 화업사 진응 강백에게 수학
수학 시기/일시 1935년 - 서경보 완주 위봉사 주지 춘담에게 수학
수학 시기/일시 1944년 - 서경보 일본으로 유학
수학 시기/일시 1950년 - 서경보 귀국 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69년 - 서경보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으로 취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0년 - 서경보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92년 - 서경보 세계 불교 법왕청 초대 법왕(法王) 추대
몰년 시기/일시 1996년 6월 25일연표보기 - 서경보 사망
출생지 서경보 출생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
학교|수학지 화엄사 -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학교|수학지 위봉사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학교|수학지 동국대학교 -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성격 승려|학자
성별
대표 경력 혜인대학교 교수, 동아대학교 철학과 주임교수,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 조계종 원로위원, 선교종 정종, 세계불교 법왕청 초대 법왕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 출신의 승려이며 학자.

[활동 사항]

본관은 이천(利川). 법호는 일붕(一鵬)이며, 출가 때 받은 법명은 회암(悔巖)이다. 1914년 10월 10일 서귀포시 도순동(道順洞)의 엄격한 유가(儒家)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라면서 몸이 좋지 않아 태몽(胎夢)의 뜻을 따라 19세에 불교에 귀의하였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沙溪里)산방굴사(山房窟寺)의 혜월(慧月)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고 그의 제자가 되어 약 1년간 제주에서 수행하였다. 1933년 화엄사 진응(震應) 강백을 찾아가 수학하다 1935년 진응이 완주의 위봉사(威鳳寺)로 강원(講院)을 옮기자 함께 따라가 수학하였다. 당시 위봉사의 주지였던 춘담(春潭)이 서경보를 법제자(法弟子)로 삼아 ‘일붕’이라는 법호를 지어주었다. 이후 위봉사 강원이 문을 닫자 서울특별시 개운사(開運寺) 박한영(朴漢永)의 문하로 3년간 수학하였다. 이후 박한영의 천거로 월정사 강원의 강사로 재직하던 중 1944년 김태흡(金泰洽) 교수의 권유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고, 교토 임제종 임제전문대학교(臨濟專門學校) 철학과에서 1946년까지 수학하였다.

귀국 후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암동의 안양암에서 포교법사로 있으면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입학하여 1950년 졸업하면서 원광대학교와 전북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1953년에는 해인대학[현 경남대학교] 교수를 거쳐, 1956년 동아대학교 철학과 주임교수로 재직하였고, 1962년 동국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1969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에 취임하였다. 이렇게 대학 강단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활발한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1962년에는 한국불교청년회 총재와 불국사 주지로 추임하였으며, 미얀마·독일·스리랑카·영국·미국 등지의 대학에서 교환교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외포교에 열정을 다하여 그가 방문한 나라가 157개국에 달하였고, 특히 미국 지역 사찰 건립이라는 활발한 포교활동으로 양국간의 문화교류 증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조계종의 원로의원을 지냈던 그는 1988년 대한불교 일붕선교종을 창종(倉宗)하며 조계종계를 떠나, 선교종(禪敎宗) 종정(宗正)을 지내다가, 세계인류평화 및 세계전법 세계불교의 단합을 위해 제14차 세계불교도우의회 국제대회에서 세계불교 법왕청 설립을 제안하고 1986년부터 설립위원회를 결성, 1992년 세계불교 법왕청 설립 총회에서 초대 법왕(法王)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1994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개최된 2차 총회에서 부처님 오신날을 세계평화의 날로 제정하는 등 세계전역을 다니며 평화를 주창하였다.

서경보는 또 한반도 남단 마라도에서 최북단 통일전망대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남북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시비를 건립하였고, 또한 유엔의 전권대사 유네스코 특사로 활약하며 유엔총회에서 핵무기 폐기 등을 강조, 이러한 일련의 세계평화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세계평화교육자협회(IAEWP)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하였다. 제4공화국 시절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제5공화국에서는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는 1996년 6월 25일 서울특별시 종록구 신영동 소재 법왕청에서 83세, 법랍 64세로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그는 살아 생전 국내외 25개 대학에서 불교 및 철학 강의와 대학 초청세미나를 열었고, 수많은 불교사상 교양전집 등의 저서를 저술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불교성전(佛敎聖典)』·『불교사상교양전집』·『서경보인생론전집』 등이 있다. 또한, 126개의 박사학위, 1,042권의 저서, 757개의 통일기원비 건립, 50만여 점의 선필(禪筆), 최대 석굴법당 건립 등 5개 분야에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하였다.

[묘소]

장례는 1996년 7월 1일 동국대학교 교정에서 종단장(宗團葬)으로 치러졌고, 다비식(茶毘式)은 경남 의령에 있는 일붕사(一鵬寺)에서 거행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0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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