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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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興-里民間信仰遺蹟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집필자 | 강소전 |
포제단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2리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2리에 있는 민간 신앙 관련 유적.
[개설]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2리에는 민간 신앙 유적으로 유교식 마을제를 지내는 포제단(酺際壇)과 무속식 당제를 지내는 본향당·드렛당이 있다. 여기에 방사(防邪)를 위하여 세운 거욱대가 있다.
[위치]
포제단은 여절악 남쪽에 있다. 1996년경에 현재의 여절악 자리로 옮겨 제단이 없이 포제를 지내다가 3~4년 후에 행정기관의 지원을 받아 제단을 마련했다. 본향당은 고수동 사거리 남쪽에 위치한 한 과수원 안에 있다. 한편 드렛당은 신흥1리 바닷가 포구의 서쪽 끝에 있다.
[형태]
포제단의 제단은 잘 다듬은 사각형의 돌로 두 개를 만들었다. 왼쪽의 제단은 높고, 바로 이어서 붙은 오른쪽의 제단은 그보다는 좀 낮다. 오른쪽의 제단은 희생(犧牲)을 올리는 곳이다. 전체적으로 제장은 매우 넓은 편이며, 제단 뒤와 옆을 시멘트 담으로 둘렀다. 당은 자연적인 암석이 궤를 이룬 형태이다. 궤를 이룬 바위 아래로는 자연석 잡석을 모아 평평하게 다듬어 제단을 만들었다. 지전이나 물색 등을 걸어 두지는 않았다. 한편 당의 바로 옆에는 굿당이 있다. 바깥의 당이 장소가 비좁고 우천에도 보다 편히 당굿을 하려는 의지로 지은 것이다.
본향당은 웃토산[토산1리]에서 가지 갈라 온 당이기 때문에 당본풀이도 웃토산의 일뤠당과 같다. 드렛당은 당집 앞으로는 돌담을 낮게 둘렀다. 당집에는 검은색 차양막이 둘러쳐져 있다. 평상시에는 문을 잠가 놓아 출입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드렛당 역시 인근 마을인 알토산[토산2리]의 드렛당에서 가지 갈라온 당이기 때문에, 당의 유래도 같다.
고수동에는 거욱대가 1기 있다. 속칭 ‘멩지내’라는 지경이 허(虛)하다고 해서 마을 주민들이 세운 것인데, 지금껏 남아 있다. 거욱대를 세운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80여 년 전이다. 거욱대는 돌탑과 그 위에 나뭇가지 일부가 박혀 있는 상태이다. 원래 돌탑을 쌓고 그 위에 크게 ‘十’ 모양으로 나무를 박은 형태였는데, 현재는 돌탑만 남아 있고 위에 박혀 있던 ‘十’ 모양의 나무는 돌탑 속에 박힌 부분이 약간 남은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라진 것이다. 돌탑은 안으로 잡석을 채우고, 그 바깥으로는 쌓기에 적당한 큰 돌을 둘렀다. 크기는 높이 332㎝, 밑지름 290㎝이다. 탑돌의 크기는 표준이 될 만한 곳을 선택하여 측정하면 상단부 31×17㎝, 28×49㎝, 23×28㎝, 하단부 26×59㎝, 20×35㎝, 24×46㎝이다.
[의례]
포제는 유교식 의례로 남자들이 중심이 되어 치른다. 토지지신(土地之神) 1위를 모시며, 희생으로 돼지 한 마리를 올린다. 제관 중 삼헌관은 마을회의에서 추천하며, 현재 제관은 6~7명 정도이다. 제청은 2008년부터 신축된 신흥리 사무소인 복지타운을 이용한다. 본향당의 제일(祭日)은 정월 보름, 6월과 11월의 일뤠[七日]이다. 하지만 현재 6월과 11월의 제일은 7일에서 5일로 바뀌었다. 마을에 거주하는 매인심방이 없어서 다른 마을의 심방을 빌어서 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제물은 메와 돌래떡[여의치 않을 경우 빵으로도 대체 가능]과 액막이용 닭, 구운 생선, 삼색 물색, 그리고 계란·시렁목·제비쌀·실·지전 등이다. 정월 보름의 제일에는 아침 일찍 일곱 시 전에 시작해서 오후 서너 시경에 끝나는데, 마을 사람 50여 명이 찾아와서 크게 한다. 액막이가 많을 때는 약 150개 이상이 되기도 한다.
6월과 11월의 제일에는 심방이 앉아서 하는 ‘앚인제’로 진행한다. 새벽 일찍부터 시작하면 대개 오전 중으로 끝난다. 정월 보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고, 일뤠에는 찾아가는 사람들이 그보다는 적은 편이다. 드렛당은 마을 아래쪽에 위치해 있어서 ‘알당’이라고도 하는데, 제일은 음력 6월과 11월의 여드레[八日]이다. 이 당도 현재는 심방의 사정으로 여드레인 8일에서 6일로 제일이 바뀌었다. 드레당은 바다에 지(紙)를 드리는 당이다. 알당에도 본향당과 같은 제물을 올린다.
[현황]
마을 포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부터는 온천동·고수동·수도동·하동 등 마을별로 분리하여 봉행하였다. 그 후 4·3사건으로 인해 잠시 중단된 적이 있었고, 이때 수도동은 주민 전체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되어 자연히 폐지되었다. 1994년부터는 온천동이나 고수동 등을 구분하지 않고 신흥2리의 모든 주민이 함께 봉행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의의와 평가]
신흥1리와 신흥2리는 지난 1961년에 행정구역이 나눠진 것이어서 당신앙의 경우에는 신흥리 마을 전체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 거기다가 인근 마을인 속칭 ‘웃토산’과 ‘알토산’의 당신앙이 신흥2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신흥2리 주민들은 마을 내 속칭 ‘오로콤머체’라는 지경에 있는 본향당과, 신흥1리의 바닷가 포구 근처에 있는 드렛당에 다니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를 두고 “본향과 일뤠[큰각시], 드레[족은각시] 삼부처(三夫妻)”라고 인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