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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1828
이칭/별칭 허벅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집필자 김동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생활 용구
재질 찰흙|양철
용도 물을 길어 운반할 때 썼던 항아리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물을 길어 운반할 때 쓰였던 용기.

[개설]

제주도 사람들의 식수원인 물통은 평지가 아닌 곳에 위치하였을 뿐만 아니라 길이 험하여 식수(食水)를 확보하여 운반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많은 양의 식수를 흘러내리지 않는 용기에 담아 둘러매고 운반하여야 했는데, 이 때 사용한 도구가 물허벅이다.

[연원 및 변천]

1521년(중종 16) 김정(金淨)「제주풍토록」에서 ‘짐은 등에 지고 머리에 이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허벅은 물구덕에 넣고 물구덕 바닥에는 대를 쪼개어 받침을 두어 음료수를 멀리서 운반할 때 사용하였던 민속품이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옹기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목통으로 식수를 운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521년(중종 16) 김정(金淨)「제주풍토록」에서 ‘한라산과 제주에 샘이 매우 적었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5리나 되는 샘에서 물을 하루에 1~2회 길어온다. 그러나 짠 샘이 많고, 많이 길어 가기 위해 언제나 목통(木桶)을 이용하였는데, 주로 여자들이 많이 이용하였다’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름드리 목재가 많았던 제주의 여건에서 목통의 이용은 이해가 된다.

[형태]

물허벅은 부리는 좁고 배는 불록하면서 굽은 편평하게 만든 옹기 제품으로 등에 지고 다녀도 쉽게 물이 흘러 넘치지 않게 하였다. 성인 여자가 물을 길어 나르는 것을 ‘물허벅’, 어린 여자들이 물을 길어 나르는 허벅은 ‘대바지’라고 불렀다.

대바지의 경우, 가장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섯 단계로 크기를 나누었는데, 여자 아이들은 보통 여덟살 정도부터 어머니에게서 물 긷는 법을 배웠다.

죽을 담는 ‘죽허벅’도 있다. 제주도 풍습에 상이 나면 사돈집에서 팥죽을 쑤어 와 상제들과 조문객을 대접하는데, 이때 허벅에 죽을 담아 나르면 아무리 험한 길에서도 흘러넘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쉽게 식지도 않아서 안성맞춤이었다.

이밖에 씨앗을 보관하는 ‘씨허벅’도 있었고, 육지의 오줌장군처럼 오줌을 담아서 나르는 ‘오좀허벅’도 있었다. 허벅 중에 가장 큰 ‘착바지‘는 대용량의 식수를 나르기 위해 만든 것으로, 소나 말 또는 마차를 이용해서 운반했는데, 보통은 남자들이 품삯을 받고 물을 길어다 주는 급수 용기로 쓰였다.

‘술허벅‘의 경우 물허벅과 달리 부리가 넓적하고 전이 달려 있어서 술을 흘리지 않고 따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안덕면 감산리에서 쓰던 허벅을 보면, 부리가 어른의 주먹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고, 배는 불룩하여 보다 많은 물을 담아 운반하기 좋게 만들었다. 이 허벅은 높이가 40cm, 입지름은 11.4cm 밑지름은 20.5cm 정도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물허벅은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들고 제주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화산섬이라는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식수 운반 이외에도 원형으로 이루어진 용기는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를 허벅장단이라고 하는데, 생활을 고단함을 이야기하는 사설과 어우러져 제주 고유의 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물허벅춤」이라고 부르는 제주의 민속무용은 이 허벅 장단에 맞춰 추는 춤이다. 또한 목축과 유목생활을 하였던 몽고인들의 민속품 중 ‘허위’라고 하는 가죽 제품의 식수 운반 용구가 이용되었음을 견주어 볼 때 관련성 또한 주목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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