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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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
집필자 | 현승환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7년 8월 5일 - 「제주의 네 명인」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현희순․양남학에게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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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9년 9월 30일 - 「제주의 네 명인」 『제주도부락지Ⅰ』에 수록 |
관련 지명 | 제주의 네 명인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
성격 | 전설|인물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문곡성|고전적|진좌수 |
모티프 유형 | 천리와 지리, 인술에 뛰어나 어느 대감에게 인정받는 과정의 이야기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명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제주의 네 명인」은 변방인 제주에서 천리·지리·인술에 뛰어난 문곡성·고전적·진좌수 등 명인이 서울에 가서도 인정을 받았다는 인물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제주의 네 명인」은 1987년 8월 5일 남원읍 하례리 현희순·양남학[남, 68세]에게서 채록되어 1989년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에서 간행한 『제주도부락지Ⅰ』「남제주군 남원읍 하례리 학술조사 보고서」에 ‘제주의 네 명인(名人)’으로 수록되었다.
[내용]
제주에는 복술을 잘 보는 문곡성[문영후], 명당을 잘 보는 고전적[고흥진], 의술을 잘 보는 진좌수[진좌수] 3인이 유명했다. 제주의 세 명인이 서울 어느 대감네 집에 갔더니 대감이 그들에게 실제로 능력이 있는지를 하나씩 시험하였다.
먼저 대감이 명당자리에 앉아서 고전적에게 명당지를 찾으라 하였다. 고전적이 보기에 대감이 명당 자리에 앉아 있기에 대감이 일어나면 찾겠다고 했더니 능력이 있다며 시험을 통과했다.
이번에는 대감이 놋대야 속에 엽전을 숨겨 두고 문곡성에게 무엇이 있는지를 물었는데 이것 역시 알아맞히어 시험을 통과했다.
진좌수에게는 며느리의 진맥을 요구했는데, 며느리가 제주 사람에게는 진맥을 받지 않겠다며 손목에 실을 묶지 않고 청동화로 다리에 실을 묶어 진맥을 하도록 하였다. 진맥 결과 움직임을 느낄 수 없기에 진좌수는 며느리가 심장이 뛰지 않아 죽겠다고 하였다. 대감은 제주 사람이지만 신이한 능력이 있음을 감탄하고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였다.
이상과 같은 이야기는 『한국구비문학대계』 9-3의 남제주군 남원읍 설화인 「문곡성과 명인들」과 같은 유형인데, 다른 모티브가 추가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하의 이야기가 더불어 구술되고 있는데, 이는 제보자의 의도적 변개로 보인다. 내용을 들면 다음과 같다.
이들과 더불어, 무관 출신의 보성 군수를 지냈던 양윤성의 부친은 아내가 일찍 죽자 새 아내를 얻었다. 하지만 양윤성은 계모를 끔찍이 모셨다. 사냥을 잘하여 짐승을 잡아 오면 반쪽은 부모에게 보내었다.
하지만 계모가 자기 아들에게 고기를 보내면서 남편에게는 양윤성이가 고기를 보내오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에 아버지는 양윤성에게 아버지에게 반찬도 안 보낸다며 야단을 치니 억울하여 피를 토하고 죽었다.
너무나 억울해 하여 죽어서도 저승으로 가지 못하여 그 영혼은 길을 떠돌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현훈장이 우연히 길을 가다가 보고는 안타까워했다.
[모티프 분석]
천리에 능한 문곡성과 지리에 능한 고전적, 의술에 능한 진좌수에 관한 설화는 제주도 도처에서 들을 수 있다. 그들이 제주에서만이 아니라 서울에 가서도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외에 양윤성은 효성이 뛰어나며 보성 군수를 할 정도로 무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는 제주 사람이지만 능력 있는 자들은 육지로 나가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