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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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訓長吳氏-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
집필자 | 현승환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74년 7월 12일 - 「도훈장 오씨」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에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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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4월 10일 - 「도훈장 오씨」 제주도 부락지 Ⅲ에 수록 |
관련 지명 | 도훈장 오씨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
성격 | 전설|인물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도훈장 오씨 |
모티프 유형 | 비가 오더라도 정신을 집중하여 공부하라는 계모의 가르침을 따라 도훈장이 되었다.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도훈장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도훈장 오씨」는 계모가 오씨를 친자식처럼 길러 도훈장이 되게 하자, 도훈장 역시 계모를 친어머니처럼 모셨다는 인물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도훈장 오씨」는 1974년 7월 12일~15일 제주대학교 민속박물관의 문화재연구회 소속 학생 및 지도 교수가 참여해 조사한 자료로, 성산읍 오조리에서 채록되어 『제주도 부락지 Ⅲ』, 남제주군 성산읍 오조리 학술조사보고서[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8, 1990]에 「도훈장 오씨」로 실려 있는데, 제보자는 알 수 없다.
[내용]
오씨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계모를 맞아들였다. 계모가 매우 현명하고 인자한 여자였는데 하루는 계모가 곡식을 널어 놓고는 물질가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라 하였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오씨는 걱정되어 곡식을 거둬들였다. 뒤늦게 도착한 계모는 칭찬하기는커녕 오씨에게 회초리를 들었다. 공부하지 않고 정신을 딴 데 팔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오씨는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도훈장이 되었다.
그러나 오씨가 도훈장이 된 후 몇 해 지나지 않아 계모가 돌아가셨다. 이에 오씨는 오열하며 당시의 습속으로는 장자가 계모의 상주 노릇을 할 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소 계모의 상을 차리고 상주 노릇을 하였다.
그러면서 제주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생모는 나를 낳고 죽었고 그 후 나의 계모가 오늘의 나를 길러 주셨으니 낳은 정이나 기른 정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라고 이야기하자, 제자들이 무릎을 꿇고 도훈장 오씨의 인품을 높이 칭송했다는 이야기이다.
[모티프 분석]
일반적으로 계모는 친자를 사랑하고 계자를 미워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오씨의 계모는 오히려 자신의 친자식처럼 자신을 희생하고 공부를 시켜 도훈장이 되도록 하였다.
비가 오는 데도 공부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곡식을 널어 둔 것에 신경을 써서야 바른 공부가 되겠느냐며 야단을 치는 계모의 엄한 가르침은 훗날 오씨가 도훈장이 되는 밑거름이 되었고, 이를 보답하기 위해 당시의 관습에 어그러지더라도 친어머니로 모시고 장사를 지냈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