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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960
한자 石佛寺
영어공식명칭 Seokbulsa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진북로 273[연동리 산 220-2]
시대 고대
집필자 김귀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7세기경 - 석불사 창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 -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45호 지정
중수|중창 시기/일시 1990년 - 석불사 대웅전 중창
현 소재지 석불사 -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진북로 273[연동리 산 220-2]지도보기
성격 사찰
전화 063-858-5895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연동리에 있는 한국불교화엄종 본산.

[개설]

익산 미륵사지에서 약 3㎞쯤 떨어진 곳에 있는 석불사는 백제 무왕(武王)[?~641] 때인 7세기경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찰이다. 석불사 대웅전에는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益山蓮洞里石造如來坐像)이 봉안되어 있다.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백제 때에 조성된 것으로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45호로 지정되었다. 원래의 석불사는 언제 폐사되었는지 전하지 않고 지금의 사찰은 1990년대에 중수하였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석불사는 백제 무왕 때인 7세기 전반에 익산 미륵사 창건에 앞서서 창건되어 12~13세기경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될 뿐 창건 연대는 물론 언제 폐사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절터에서 발견된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을 보호하기 위하여 미륵전을 짓고 ‘석불사’라고 명명하였다는 사실만 전한다. 현재의 석불사는 1990년대에 이르러 새로이 법당을 건립하여 불상을 봉안하고 삼성각과 종각, 석탑, 일주문 등을 지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석불사는 대한불교화엄종 소속 사찰이었으나 1994년 주지 정운이 한국불교화엄종으로 소속을 바꾸어 현재는 한국불교화엄종의 본산으로 되어 있으며, 화엄종 종정 사찰로 알려져 있다. 대웅전에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옆으로 아미타불·관음보살·대세지보살의 삼존불이 조성되어 있다. 지금의 대웅전은 1990년에 새로 지었고, 삼성각은 1995년에 중수하였으며, 일주문은 1992년에 세웠다. 삼성각 옆으로 석조약사여래상이 조성되어 있고 이외에 종각, 오층석탑 등이 배치되어 있다.

[관련 문화재]

석불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현존 최대 규모의 백제 불상이다. 암벽에 조각한 마애불이 아닌 원각불로 정유재란[1597] 이후 땅속에 묻혀 있다가 1930년경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머리 부분만 없고 불신(佛身), 대좌(臺座)나 광배(光背) 등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나 광배 높이 326㎝, 머리를 제외한 신체 높이 156㎝로 거대하여 그 자리에 누각을 세워 보존하여 오다가 지금의 석불사를 창건하면서 대웅전으로 옮겨 안치하였다고 한다. 떨어져 나간 머리 부분은 정유재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안개가 짙어 진격할 수 없자 이 석불의 조화라고 생각하여 머리를 잘라 밭에 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머리는 근래에 새로 조성하여 지금의 몸 높이는 169㎝이다.

당당한 어깨, 균형 잡힌 몸매, 넓은 하체 등에서 빼어난 활력을 나타내고 있는 한편 거대한 광배, 큼직한 대좌는 장중하면서도 세련된 특징을 보여 준다. 옷주름표현은 부드럽고 유연하여 백제 특유의 조형을 보여 주며, 광배의 연꽃무늬와 불꽃무늬는 정교하게 표출되어 있다. 2017년 7월 익산시는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불두가 정확한 고증 작업을 거치지 않은 채 조잡하게 복원하여 불상이 지니고 있는 본연의 가치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에 불두의 원형 모습을 찾기 위한 연구 용역에 착수한 바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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