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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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口碑 傳承 |
영어공식명칭 | Gubi jeonseu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섭 |
[정의]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 문자가 아닌 말로써 전승되는 설화, 민요, 무가, 판소리 등의 총체.
[설화]
설화란 한 민족 사이에서 구전되어 온 이야기로서 단순하고 간편한 표현 형식을 가지는데, 대체적으로 꾸며 낸 이야기를 말하며 신화·전설·민담으로 분류한다. 신화는 역사상의 근거는 없으나 그 씨족이나 부족 또는 민족에 있어서 신격을 주동자로 하여 엮어져 전하여 오는 설화다. 신화는 예술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문학의 최초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단군 신화 등과 같이 국가의 시조 신화나 박혁거세 신화, 김수로 신화와 같은 성씨의 시조 신화 등이 있는데, 거창에서는 본격적인 신화는 보이지 않는다.
전설은 신화의 단계에서 훨씬 뒤에 형성되었고 신화보다 좀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설화인데, 실재하는 장소, 시대, 인물을 구체적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전설은 각 지방의 산악, 하천, 암석, 인물, 수목 등과 같은 구체물에 결부되어 토착성과 고정성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전설들은 주민들에 의하여 구전되다가 차츰 예술적으로 세련되게 문학으로서의 형식을 갖게 되었다. 거창의 전설은 1970년대 하반기에 발굴 조사되어 1991년에 박종섭에 의하여 『거창 전설』이 출간되었는데, 여기에는 242편의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유형별로는 전국 각지에서 나타나는 유형이 총망라되어 나타나고 있는데, 기원담, 변신담, 응보담, 초인담, 운명담, 교훈담, 염정담, 치우담, 과장담 등이 다양하게 조사되었다. 민담은 오직 흥미 위주로 엮어지는 이야기를 이른다. 민담은 뚜렷한 시간과 장소가 없으면서도 체계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쉽게 기억되고 구연되며 재창조되기도 한다. 사건에 대한 아무런 증거물이 없는 창조적인 이야기, 즉 허구다. 민담은 후대에 발전되어 고대 소설의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거창의 민담은 전설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조사되었는데, 발굴된 민담은 모두 342편이었으나 2012년 12월에 박종섭이 임의 발췌하여 민중 의식, 기지, 지혜, 운명, 해학, 전기, 인륜, 풍수 등으로 분류하여 81편을 엮어 『거창 민담』을 발간하였다.
[민요]
민요는 서민들이 일상생활에 있어 노동, 의식, 놀이 등을 하면서 불러온 구전 가요다. 민요는 문학이면서 음악인데, 서민들의 생활 모습과 정서를 잘 함축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시나 시조, 가사 등의 시가 양식과 성격을 달리한다. 민요는 설화와 마찬가지로 문자에 의한 기록과 무관하게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대체로 농축된 정서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민요는 서민의 일상생활에서 불리는데, 특히 노동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이러한 민요에는 서민의 생활 감정이 다른 어느 양식보다도 잘 포함되어 있다. 민요는 가락에 실려 불리는 것이기 때문에 노래로 부르기에 적합하도록 그 율격이나 형식이 다듬어져 있다. 민요의 율격은 일정한 정형성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거창의 민요에도 삶의 온갖 경험과 다양한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노동의 고달픔과 보람,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의 정서, 남녀 간의 사랑, 윤리 의식, 종교적 축원, 동물·식물 등 사물의 묘사에서 말놀음에 이르기까지 민요의 내용은 다양하다. 거창의 전승 민요 역시 1970년대 후반에 박종섭에 의하여 설화와 함께 집중 조사되었는데, 1992년 12월에 노동요 586곡, 유희요 183곡, 정한요 244곡, 잡가 206곡, 의식요 40곡을 모아 『거창 민요』를 출간하였다.
[판소리]
판소리를 창안하고 발생시킨 계층은 하층민이었으나 판소리가 지닌 예술성에 심취하여 조선 후기에는 양반 계층이 향유층으로 가담하였으며 이러한 연유로 초기의 양반에 대한 풍자가 양반의 취향에 맞게 그 내용이 일부 변화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판소리는 민중들의 의식과 양반들의 철학까지를 포용하면서 민족 문학으로 발전하여 왔으나 판소리 예능인의 전문적인 기능을 일반 대중이 익히기가 어려웠기에 대중화되지 못하고, 전문 예능인에 의해서만 전승되어 왔다. 거창군은 판소리의 발상지로 알려진 전라북도 남원 지역과는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이곳에서 판소리가 전승되어 연희되었다는 고증은 없다. 다만 판소리 사설이 민요로 전이되어 불리고 있어서 조사되었다. 1977년 8월 10일 거창군 가조면 도리 대학로의 유계준[남, 77세]과 1985년 8월 4일 거창읍 동변리 박생이[남, 77세]로부터 조사된 「초한가」와 1977년 6월 1일 거창읍 양평리 이기윤[남, 57세]과 1985년 7월 24일 거창읍 가지리 중촌 김정각[여, 59세]으로부터 조사된 「꿩타령」, 1976년 8월 17일 가조면 도리 대학동 유계준[남, 76세]과 1985년 8월 20일 거창군 주상면 거기리 8월 26일 백성기[남, 71세]로부터 조사된 「토끼 화상」 등과 같은 판소리류의 민요가 거창에 전승되고 있을 뿐이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거창군 문화 센터에서 판소리 강좌를 개설하는 등 그 외연을 넓혀 가고 있다.
[무가]
무가는 무당이 굿을 할 때 부르는 노래다. 무당과 굿은 서로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에 무가는 그 전승이 제한되어 있고, 전문성을 지니며, 주술성, 신성성을 지닌다는 특성이 있다. 무속 신앙은 우리 민족과 국가가 형성될 무렵부터 민족 신앙의 줄기가 되었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과 같은 제천 의식은 무속 신앙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서, 이때 무가가 구연되었으리라 추정된다. 유교가 지배 이념으로 채택된 조선 시대에도 무속 신앙은 민간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으며 다양한 무가들이 전승되었는데, 오늘날 전해지는 동해안, 남해안의 무가에서 이 시기 무가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거창의 무가는 사단 법인 향토 민속 보존 협의회에서 1996년에 발굴한 「상여 디딜방아 액막이 소리」와 열두 달의 액을 막아 주기를 기원하는 「액막이 타령」이 있으며, 지신밟기할 때 농악의 상쇠가 메기는 「성조풀이」 등이 있다.
[민속극]
민속극 역시 거창에서 전승되고 연희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근래에는 한대수[남, 62세]가 주관하는 ‘거창 아시아 1인극제’가 1년에 1회, 거창군 고제면에서 공연되고 있는데, 젊은 층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켜 외연을 넓혀 가고 있다. 농악 연희에서 보이는 잡색들의 역할이 민속극의 면면을 드러내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거창군 마리면과 경계한 함양군 안의면에서 민속극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자료가 조사되었다. 2005년 8월 4일 안의면 이전리 율림 김상수[남, 68세]와 2005년 8월 16일 안의면 석천리 석천 변승옥[남, 77세]의 제보에 의하면, 안의면에서 민속극인 「말뚝이 놀이」가 전승되어 왔으나 일제 강점기에 전승의 맥이 끊어진 뒤 해방 이듬해 공연을 했는데 말뚝이 역은 고 이동식, 중은 고 이신규, 장단에 고 김수학, 그리고 고 김화준 등이 주동이 되어 율림에서 연행했다고 한다. 제보자 변승옥은 말뚝이가 하는 대사의 일부도 기억하고 있으나 지금 복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