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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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邑格- 乘降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심민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414년 - 거제현과 거창현을 제창현으로 통합, 삼기현과 가수현을 삼가현으로 통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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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415년 - 거제현을 복원하고 제창현은 거창현으로 환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417년 - 감음현에서 안음현으로 개칭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495년 - 거창현이 거창군으로 승격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506년 - 거창군이 거창현으로 강등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58년 - 거창현을 폐지하여 안음현에 붙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60년 - 거창현 복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729년 - 거창현을 도호부로 승격하고 폐지된 안음현 북부 편입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739년 - 거창현이 다시 거창 도호부로 승격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767년 - 안음현에서 안의현으로 개칭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788년 - 거창 도호부에서 거창현으로 강등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799년 - 거창현이 거창도호부로 승격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95년 - 거창부를 거창군으로, 안의현을 안의군으로 변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4년 - 안의군의 북상·북하·고현·동리·남리면과 삼가군의 신지·율원면을 거창군으로 편입 |
[정의]
조선 시대 거창 지역 읍격이 변화하는 양상.
[개설]
‘거열(居烈)’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던 거창 지역은 통일 신라 757년(경덕왕 16)년에 이르러 비로소 ‘거창(居昌)’이라는 지역 명칭을 얻게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합주(陜州)[지금의 합천]의 속현이 되기도 하고, 1271년(원종 12)에는 몽고, 혹은 왜구로 인해 거제현의 치소를 옮기면서 지리적 요충지로 자리매김했다.
조선 시대에는 중종반정, 노비가 주인을 살해한 사건, 무신란(戊申亂) 등으로 인해 읍격에 변화를 거듭하였다.
[조선 시대 거창의 읍격]
조선 개창 후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요충지로서의 성격은 유지되었다. 1414년(태종 14)에는 거제현과 거창현을 합하여 제창현(濟昌縣)으로 통합하고, 삼기현과 가수현을 합쳐 삼가현(三嘉縣)으로 통합하면서 거창 지역은 제창현, 삼가현, 그리고 감음현(感陰縣)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구획된 셈이 되었다. 이렇게 행정 구역이 개편되는 과정에서 1415년에는 제창현으로 통합되어 있던 거제현이 떨어져 나가 복원되면서 거창현은 본래의 이름을 되찾게 되었고 현감도 임명되었다. 또한 1417년에는 감음현이 안음현(安陰縣)으로 개칭되었다. 1439년에는 삼가현 관청을 가수현으로 옮겼다. 이후 특별한 변화가 없다가 1495년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당시 왕비였던 단경 왕후 신씨의 출신지가 거창이라는 이유로 거창현을 군으로 승격하였다. 하지만 1506년 연산군 사후 중종이 즉위하자 연산군 축출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단경 왕후 신씨도 폐위되면서 거창군은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다.
1658년에는 거창 지역에서 노비가 주인을 죽이는 사건[노살주의 변]이 발생하면서 유교 질서의 입지가 타격을 받게 되자 거창현을 없애 안음현(安陰縣)에 소속시켰다. 하지만 1660년에 장의신이 복원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려 거창은 다시 ‘거창현’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1728년에 무신란(戊申亂)이 발생하자 이에 거창민들이 적극적으로 창의 활동을 벌인 덕분에 무신란으로 폐지된 안음현 북부를 편입하면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1736년 거창에 편입되었던 안음현은 다시 복구되었고, 거창 도호부는 다시 거창현이 되었다. 1739년 단경 왕후 신씨가 복위되자 거창현도 도호부로 재차 승격되었지만 1787년 다시 거창현으로 환원되었다. 그동안 1767년에는 안음현이 안의현(安義縣)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799년에는 거창현이 다시 거창부로 승격되었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과정에서 거창부와 안의현은 각각 거창군, 안의군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14년 일제에 의해 행해진 행정 구역 통폐합 과정에서 안의군의 북상·북하·고현·동리·남리를 거창군에 붙이면서 서부 지역이 되었고, 삼가군의 신지·율원면 또한 거창군에 붙여 남부 지역을 이루었다.
거창 지역은 고려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요충지라는 지리적 성격으로 인해 행정 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유교적 사상, 질서를 중시하던 조선 시대로 접어들면서 유교 사상의 핵심지 역할을 했던 거창 지역의 특성상 읍격의 변화 또한 그런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따라서 유교 질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던 ‘노살주의 변’이 있었을 때에는 강등, 무신란 기간 동안 충의로운 활동을 했던 시기 거창의 읍격은 승격되었다. 또한 유교 이념으로 인한 붕당 정치의 실상으로 인해 관련 인물들의 지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읍격이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