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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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韋觀集 |
영어공식명칭 | Wigwanjip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정희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출신의 근대 유학자 윤충하의 문집.
[저자]
윤충하(尹忠夏)[1885.1.21~1946.8.5]의 자는 상화(尙華), 호는 위관(韋觀), 본(本)은 파평(坡平)이다. 아버지는 윤수도(尹守道), 어머니는 하빈 이씨다.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에서 1885년에 태어났다.
면우 곽종석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7년 나인영(羅寅永) 등과 함께 을사오적을 주살할 것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던 중 체포되어 유형(流刑) 10년을 선고 받았다. 1919년 유림들의 파리 강화 회의 독립 청원서 제출 필요성을 스승 곽종석에게 알리고, 곽종석의 지시에 따라 곽윤·김황 등과 함께 상경하여 심산 김창숙을 만나 파리 강화 회의에 제출할 독립 청원서인 파리 장서를 작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후 1921년 9월 태극단(太極團)의 대표로 태평양 회의에서 일본의 한국 강점을 부인함과 동시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한국 정부로 승인해 줄 것과 파견된 한국 위원의 출석권을 요청하는 내용의 청원서에 서명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줄기차게 활동하였다. 1995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저술로 1권 1책의 『위관집(韋觀集)』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위관집』은 윤충하의 시문집으로, 삼종질(三從姪) 윤철수(尹哲洙)가 편찬하여 1939년 석인본(石印本)[석판에 의하여 인쇄된 책]으로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1권 1책의 석인본으로, 규격은 반곽(半郭)[글이 담긴 테두리 안쪽 면]이 22.0×15.9㎝이고, 광곽(匡廓)[판의 사주를 둘러싼 검은 선]은 28.6×19.5㎝이다. 사주 쌍변(四周雙邊)[지면의 네 둘레를 두 개의 선으로 돌림]에 어미는 상내향 흑어미(上內向黑魚尾)[위쪽의 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어미가 아래쪽을 향하는 형태]이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와 판심제(版心題)[책장의 가운데 접힌 곳인 판심에 표시된 책의 이름]는 ‘위관집(韋觀集)’이다. 각 면은 12행 28자로 되어 있다. 국립 중앙 도서관에 원본이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위관집』은 1권 1책 분량으로, 서문은 1939년 정재성(鄭載星)이 썼다. 1권에서 2권까지는 시가 실려 있다. 3권은 소(疏), 서(書), 서(序), 기(記), 발(跋), 명(銘), 행록(行錄), 묘갈명(墓碣銘), 비문(碑文), 묘표(墓表)로 이루어져 있고, 4권은 제문(祭文), 상량문(上樑文), 잡저(雜著), 논(論), 설(說), 포문(褒文), 통문(通文)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록에는 아들 윤종수(尹鍾洙)가 쓴 윤충하의 가장(家狀), 최훈교(崔薰敎)가 지은 묘갈명이 있다. 발문은 삼종질 윤철수가 1939년에 지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