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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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熊溪遺集 |
영어공식명칭 | Unggye Yujip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구경아 |
저술 시기/일시 | 1856년~1944년 - 『웅계유집』 이현구가 저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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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956년 - 『웅계유집』 이기영이 간행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 『웅계유집』 영인본 간행 |
소장처 | 경상 대학교 도서관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900 |
소장처 | 고려 대학교 도서관 - 서울 성북구 안암동 5가 1-2 |
소장처 | 원광 대학교 도서관 -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 32 |
성격 | 문집 |
저자 | 이현구(李鉉九) |
간행자 | 이기영(李基永) |
권책 | 3권 2책 |
행자 | 12행 26자 |
규격 | 반곽(半郭) 22.0×14.3㎝|광곽(匡郭) 28.7×19.2㎝ |
어미 | 상 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內向二葉花紋魚尾) |
권수제 | 웅계유집(熊溪遺集) |
판심제 | 웅계유집(熊溪遺集)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 출신 관료·학자 이현구의 문집.
[저자]
이현구(李鉉九)[1856.2.18~1944.4.4]의 자는 우건(禹建), 호는 웅계(熊溪),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아버지는 경회당(景晦堂) 이준형(李浚馨)이고, 어머니는 남평 문씨(南平文氏) 문경목(文敬穆)의 딸이다. 친아버지는 이준옥(李浚玉)이고, 친어머니는 합천 이씨(陜川李氏) 이재동(李再東)의 딸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종숙부(從叔父) 병와(病窩) 이준황(李埈璜)에게 배웠는데, 이준황의 추천으로 1890년부터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에게 수학하였다. 민영회(閔泳會)·민치헌(閔致憲)·민상호(閔商鎬)·박해철(朴海喆)·김병선(金秉先) 등과 교유하였다.
1900년에 전화과 주사(電話課主事), 1901년에 양지아문 양무 위원(量地衙門量務委員)에 임명되었고, 1906년에 품계가 승훈랑(承訓郞)에 올랐다. 그러나 일본이 철도를 놓고 전화국을 설치하는 등 정사가 날로 어긋나자 벼슬을 버리고 전국의 산수를 유람하면서 시를 지으며 여생을 보냈다. 당시 지은 시문은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이 교정해 주었다.
부인은 밀양 변씨(密陽卞氏) 변용로(卞容魯)의 딸이다. 묘소는 거창군 웅양면 우랑동(牛郞洞) 백암산(白巖山) 아래 황우암동(黃牛巖洞) 자좌(子坐) 언덕에 있다. 저술로 3권 2책의 『웅계유집(熊溪遺集)』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1953년에 문집 간행에 대한 논의를 하여, 이현구의 조카 이기영(李基永)이 유고를 수집하고, 이돈영(李墩永)이 교정하였으며, 이현구의 사촌 이현열(李鉉烈)이 등사하여 1956년에 문집을 간행하였다. 이를 저본으로 1997년에 경인 문화사에서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웅계유집』은 3권 2책의 석판본(石版本)으로, 크기는 반곽(半郭)[글이 담긴 테두리 안쪽 면]이 22.0×14.3㎝이고, 광곽(匡郭)[판의 사주를 둘러싼 검은 선]은 28.7×19.2㎝이다. 사주 쌍변(四周雙邊)[지면의 네 둘레를 두 개의 선으로 돌림]이며, 어미는 상 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內向二葉花紋魚尾)[위쪽의 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어미가 아래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2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이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와 판심제(版心題)[책장의 가운데 접힌 곳인 판심에 표시된 책의 이름]는 ‘웅계유집(熊溪遺集)’이다.. 각 면은 12행 26자로 되어 있다. 경상 대학교 도서관, 고려 대학교 도서관, 원광 대학교 도서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웅계유집』은 이돈영의 서문을 시작으로, 권1에는 시 394제(題), 권2에는 시 268제가 실려 있다. 시의 내용은 전국의 명승지를 유람하고 지은 시들이 많은데, 이 가운데 「수승대(搜勝臺)」·「척수대(滌愁臺)」·「관수루(觀水樓)」 등 거창의 명소들을 유람하고 지은 시 역시 다수 있다. 또 「양친사효(養親思孝)」·「공기처가(恭己處家)」·「교인접물(交人接物)」·「조용금사(調用禁奢)」·「신언절차(愼言節次)」 등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범을 노래한 시는 물론, 「고체 이수(古體二首)」와 같이 나라가 멸망한 것을 두고 울분을 토로한 시들도 들어 있다. 「차운 구로회(次韻九老會)」·「석촌댁 구로회연(石村宅九老會讌)」 등은 1917년에 결성된 거창의 구로회(九老會)의 모습을 담은 시들로, 당시 거창 지역 지식인들의 활동이 실려 있다.
권3에는 서(序) 1편, 기문 2편, 애사(哀詞) 1편, 묘갈음기(墓碣陰記) 3편, 묘표 2편, 묘지 1편, 행장 1편, 전 1편이 있고, 부록은 아들 이택영(李宅永)이 쓴 가장, 이현돈(李鉉墩)이 쓴 행장, 권용현의 묘갈명과 「송 이웅계 서유 서(送李熊溪西遊序)」, 이현렬(李鉉烈)의 발문이 있다. 「송 이웅계 서유 서」는 1928년 이현구가 73세의 나이로 해주의 석담(石潭)으로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사당에 배알하고 묘향산 등을 유람하고 온 것에 대한 기문으로, 정재성(鄭載星)이 썼다.
[의의와 평가]
『웅계유집』은 이현구의 정치·학문·문학을 알 수 있는 문집이다. 또한 거창 지역의 명승지에 대해 확인할 수 있으며, 1917년대 거창 지역의 시사(詩詞)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