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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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后南集 |
영어공식명칭 | Hunamjip |
이칭/별칭 | 후남 문집(后南文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구경아 |
저술 시기/일시 | 1875년~1943년 - 『후남집』 강인수가 저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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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962년 - 『후남집』 강병희가 간행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5년 - 『후남집』 영인본 간행 |
소장처 | 경상 대학교 도서관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900 |
소장처 | 국립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산60-1 |
소장처 | 계명 대학교 동산 도서관 -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 1000-2 |
성격 | 문집 |
저자 | 강인수(姜寅洙) |
간행자 | 강병희(姜秉僖) |
권책 | 5권 2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반곽 19.4×13.4㎝|광곽 28.7×19.4㎝ |
어미 | 상 내향 흑어미(上內向黑魚尾) |
권수제 | 후남문집(后南文集) |
판심제 | 후남문집(后南文集) |
[정의]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에서 활약한 유학자 강인수의 문집.
[저자]
강인수(姜寅洙)[1875.6.15.~1943.6.14.]의 자는 경부(敬夫), 호는 후남(后南),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할아버지 청은(聽隱) 강세순(姜世淳) 때부터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강기찬(姜琦鑽)이고, 어머니는 전주 이씨(全州李氏) 이혁규(李爀圭)의 딸이다. 거창군 북상면 동산리에서 태어났다.
8세에 할아버지 강세순에게 배웠고, 뒤에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또 대계(大溪) 이승희(李承熙)가 거창군 가조면의 원천(源泉)에 우거할 적에 자주 왕래하며 천인(天人)·성리(性理) 등에 대해 질문하였다.
1905년 곽종석이 을사늑약 체결 소식을 듣고 을사오적을 참수할 것을 주장하는 상소를 써서 상경할 때 동행하였으며, 1919년 파리 장서로 인해 곽종석이 대구 감옥에 구금되었을 때도 시종 곁에서 안부를 물었다. 곽종석 사후에는 한양에서 문집을 간행할 적에 참여하였다. 다천재사(茶川齋舍)가 퇴락하자 1936년에 중수하는 데 참여하였다. 만년에는 거창군 거창읍 양평 마을로 옮겨서 아호(鵝湖) 가에 청은재(聽隱齋)를 짖고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부인은 밀양 변씨(密陽卞氏) 변희오(卞熺五)의 딸이다. 묘소는 정구산(井口山) 갑좌(甲坐)에 있다. 저술로 5권 2책의 『후남집(后南集)』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후남집』은 강인수의 아들 강병희(姜秉僖)의 주도로 직접 가장(家狀)[조상의 행적에 관한 기록]을 쓰고 문갑주(文甲柱) 및 강인수의 제자들과 함께 유문을 수집하였다. 이후 1945년 최훈교(崔薰敎)에게 행장, 전봉수(全鳳遂)에게 행록, 1948년 이태식(李泰植)에게 묘갈명, 1962년 권도용(權道溶)에게 묘지명을 요청하여 받아 원고를 완성하였다. 이에 김황이 1차 교정을 하고, 변규석(卞珪錫)이 2차 교정을 하였으며, 변규석·곽정(郭濎)·문갑주의 발문을 받아 1962년에 간행하였다. 이를 저본으로 1995년 경인 문화사에서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후남집』은 5권 2책의 신연 활자본(新鉛活字本)으로 된 문집으로, 책의 크기는 반곽(半郭)[글이 담긴 테두리 안쪽 면]이 19.4×13.4㎝이고 광곽(匡廓)[판의 사주를 둘러싼 검은 선]은 28.7×19.4㎝이다. 사주 쌍변(四周雙邊)[지면의 네 둘레를 두 개의 선으로 돌림]이며, 어미는 상 내향 흑어미(上內向黑魚尾)[위쪽의 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어미가 아래쪽을 향하는 형태]이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와 판심제(版心題)[책장의 가운데 접힌 곳인 판심에 표시된 책의 이름]는 ‘후남문집(后南文集)’이다.각 면은 10행 20자로 되어 있고, 각 행은 경계선이 있다. 경상 대학교 도서관, 국립 중앙도서관, 계명 대학교 동산 도서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후남집』은 김황의 서문을 시작으로, 권1에는 시 161제(題)가 실려 있다. 시 가운데는 거창의 도장재(道章齋)·심소정(心穌亭)·도천재(道川齋)·일원정(一源亭)·낙영재(樂英齋) 등지에서 이이계(二以契)가 활동한 내용과 거창의 다전(茶田)·수월산(水月山) 등지에서 향음주례(鄕飮酒禮)[예전에, 온 고을의 유생이 모여 향약을 읽고 술을 마시며 잔치하던 일]를 시행한 뒤에 감회를 기록한 시들이 다수 있다.
권2에는 스승 곽종석 등에게 보내는 편지 25편, 권3에는 편지 26편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학문을 토론한 내용이 많은데, 첫 번째 「상 면우 선생(上俛宇先生)」에는 곽종석에게 『맹자』「고자(告子)」의 거경(居敬)·집의(集義)·호연지기(浩然之氣) 등에 대해 다섯 가지 질문을 한 것과 곽종석의 대답이 함께 실려 있다. 두 번째 「상 면우 선생」에는 심상(心喪)·상복(殤服)·역복(易服) 등 상례(喪禮)와 관련된 22개 질문과 곽종석의 답변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상 대계 이 선생 문목(上大溪李先生問目)」에는 『근사록(近思錄)』에 대한 질문 아홉 가지와 이승희의 답변이 함께 실려 있다. 또 「여 임백여 임내화 임명숙 임형국 첨좌(與林柏汝林乃和林明淑林馨國僉座)」 등은 이이계(二以契) 계원들에게 강회 모임을 계획하고, 이이계를 유지해 나가고자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권4에는 서(序) 2편, 기(記) 5편, 잠(箴) 1편, 제문 7편, 가장 1편, 묘표 3편, 비(碑) 1편이 실려 있다. 서문 가운데 「이이계 서(二以契 序)」는 거창 지역 사림들이 조직한 이이계의 취지를 기술한 것이다.
권5 부록에는 강병희가 지은 가장과 행장, 행록, 묘지명, 묘갈명, 68인이 쓴 만사, 제문 17편이 수록되어 있고, 변규석·곽정·문갑주의 발문이 책 말미에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후남집』은 강인수의 학문과 사상 및 거창 지역에서의 활약을 연구할 수 있는 문집이다. 또한 거창 지역 사림들이 계를 조직하여 거창의 명소에서 강학 활동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